한줄 詩

참회록 - 김왕노

마루안 2021. 11. 2. 22:48

 

 

참회록 - 김왕노

 

 

나는 나와 관계없다 외면해 버린 모든 것에

용서를 비는 참회의 문장이다.

내가 꽃에 수평선에 구름에 개울에 소홀했던 것

관심 밖에 둔 만큼 내가 관심 밖으로 밀려났던 것을

내 몫이라 자청하며

내게 밀려드는 샛강에서 피어난 자욱한 안개도 몰랐다.

나를 찾아왔다가 내 부재로 사라져 간 지붕 위에 떨어진 빗방울

내가 밑줄 그어야 할 세상의 모든 진실한 문장도 몰랐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문외한인 내게 있다는 것을

배꽃 분분히 휘날리는 밤에 단지로 일 획의 혈서를 쓰고 싶구나.

관점 하나만 바꿔도 모든 것이 달라져 보인다는 세상

내가 세상 밖으로 밀려난 것은 내가 세상 중심을 밀쳤던 것

무엇을 버린다면 내가 무엇으로부터 버려진다는 것을

뭔가 버리거나 소비했으므로 내가 여기 이른 것을

하여 나는 결국 참회록 한 권으로 남을 것이다.

 

 

*시집/ 도대체 이 안개들이란/ 천년의시작

 

 

 

 

 

 

마지막에 대하여 - 김왕노


넘치는 잔보다 몇 방울 남은 술에 대하여
노래의 시작보다 마지막 꺼져 가는 들불 같은 노래
마지막에 이르러 몸부림치는 네 노래에 대하여
자작나무 이파리에 토닥이다 멀어지는 빗소리
아쉽다며 울음보 터질 듯 우는 청개구리에 대하여
이제는 다시 피어날 수 없는 시드는 꽃에 대하여
개막식보다는 폐막식에 대하여 폐막식에 번지는
어둠에 대하여, 버려져 짓밟히는 꽃다발에 대하여
마침내 진짜라 했는데 가짜로 밝혀진 반지에 대하여
마지막에 대하여 말한다는 것은 아쉽다는 말
하지 말아야 할 말 같고 희비가 뒤섞여 혼란하지만
끝물의 벌판에 와 울던 물새의 노래처럼 애절해
마지막은 함구가 마땅한 것 같으나 마지막이라
한마디 건네야 하므로 엷어지다 사라지는 비행운
너와 오래 사귀던 푸른 시절을 두고 떠나
지금껏 소식 없다는 마지막 네 남자 친구에 대하여
용두사미라도 생의 처음보다는 끝에 대하여
끝에 이른 마지막 사랑에 대하여
처음 그리움보다 몰락의 그리움에 대하여
마지막이 서러워 부둥켜안고 울어도 마지막에 대해
때늦지만 멸종된 진실과 사라진 나라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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