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곳,곳 가을 - 이은심

마루안 2021. 10. 31. 19:08

 

 

곳,곳 가을 - 이은심


감나무는 감을 낳고 어미나무가 되었다 낙엽이 나무를 비울 때 시월은 더 시월인 것 가을 외에는 아무도 살지 않도록 입구를 단단히 여며두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길고 얇은 스웨터를 꺼내 입는 일
어제 운 너는 오늘 또 울게 된다고 나무가 하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나무여 나는 당신의 사람이 되지 못해 귀 막고 흘러가는 바람 혹은 각자의 얼굴을 먼 곳처럼 들고 있는 뼈아픈 부의(賦儀)

가을 상가(喪家) 문턱 너머 어린 상주는 삶에서 죽음을 뺀 어깨 넓이를 받쳐 들고 피곤하구나 근처엔 큰 산이 있어서 그림자가 산 것들의 낮은 목소리에 우렁우렁 겹쳐진다 일찍이 하산한 땅에는 한 사람분의 공터가 새처럼 부족한 속내를 푸닥거리하고

곳에서 곳으로
누운 한 사람이 가는 길

새가 깃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는데 소녀라는 말이 들어간 문장 속에서 저녁을 짖어대는 개조차 없다면 얼마나 깊은가 이 방은,

불현듯과 거침없이 사이에서 얼마나 작은가, 나는 사랑은 다 배우지 못한 질병인데

휘익 저물어

누가 부를 때마다 고개 숙이는 일이 많아진다 그냥 살자 쉽게들 말하지만 쉽게 달래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빨리 집에 가서 반쪽인 것들과 잠들고 싶다

 

 

*시집/ 아프게 읽지 못했으니 문맹입니다/ 상상인

 

 

 

 

 

 

이면지 - 이은심

 

 

조금 늦었다 잠시 어디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나를 조문하러 갔던 것일까 돌아보면 허허벌판인데 구멍 숭숭한 나는 후회였던 것이다 실루엣이 없는 막후였던 것이다

 

뒷모습이라고 다 아련한 건 아니다 다시 살려도 후생엔 퇴로가 없을 것 같다

 

필사적으로 빈 그릇이라도 덮으려 했다 일찍 문 닫은 사막에 닿는

너 다음의 나, 다음다음의 너

살수록 성긴 눈썹을 기억해

 

불경한 차례란 어설픈 그림자였던 것이다 다음 페이지가 없는 사족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귓속의 버스럭거리는 핏기는 사라지는 음악의 소유

 

그건 뉘엿뉘엿한 운 나쁜 발가락과 같다 깊은 종이의 감방 감각을 얻기까지 촛불은 치료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토막 내고 싶었던 것이다 밤은 지나가기 때문에 견딜 만했구나 낮은 또 오기 때문에 참을 만했구나

 

은은한 남루나 맛없는 눈물들을 탓하지 말자 네가 없었다면 나도 없었다 외면당할 때마다 힘껏 구겨지는 찬란

그래서 끊임없이 구별되려고 애썼다 하지만 같은 후렴 속에서 나는 여전하다

이 서열엔 말할 수 없는 재의 근육이 직전에서 딱, 멈춘다 뒤를 향하여 한 장인데 두 장처럼 팔랑거리는

 

정면을 비켜서 아아, 울다가 아무거나 되어버렸다

어쨌든 미루고 미루어 이제 도착했다 도착했으니 바로 너의 뒤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