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불가능한 휴식 - 임곤택

마루안 2021. 10. 30. 19:33

 

 

불가능한 휴식 - 임곤택

 

 

저녁은 아름답지만 너무 짧다

그 다음은

끝나지  않을 것 같고

 

번식하는 숫자들의 밤

옆방 여자가 벽을 두드린다

그녀의 남자는 등이 긁힌다

 

늘어진 스웨터

겨울밤이 끌고 다니는 곤궁

왕성한 별빛과 달빛

 

은밀하고 무례한 안부다

내가 써 놓은 편지를

누가 큰 소리로 읽는다

 

풍향이 바뀌고 창문의 좌우가 바뀌고

밤낮이 바뀌고

어떤 타락이든 칭찬받을 밤이다

 

쉽게 길드는 귀를

벽에서 떼어 낸다

 

불을 켠다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기억과 토막들

생쥐처럼 재빠른 일들

 

사방의 신맛은 사과의 즙이 아니다

그들은 계속 벽을 두드린다

 

 

*시집/ 죄 없이 다음 없이/ 걷는사람

 

 

 

 

 

 

먼지와 이파리 - 임곤택

 

 

징그러운 잔가지들

그런 것이 있지 너를 기다리는

배고픈 벌레들

그런 것이 있지 찌거기를 다투는 비둘기

먼지를 숨 쉬는

그런 것이 있지

 

골목엔 쓰레기가 쌓였지

지겹도록 끝나지 않는 싸움이 있지

누가 옳은지 알 수 없는

그러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특별히 나쁜 것도 없는

 

우리는 아무나 닮고 말았다

맞바꿔도 바뀌지 않는

우리의 무게

우리의 시간

 

너는 독백은 빈틈없이 내가 되더니

약속은 잠시 완성되더니

봄이 오더니

부고들 듣고 옛 친구를 마주치고

 

흘린 동전을 주우려 뻗은 손

불쑥 드러나는 잔가지들

가늘고 또렷한 그것을 흔들어 너는

자꾸 나를 쳐다봐

 

징그러운 그 까마득히 퍼지는

식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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