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 하나를 주웠다 - 김선우
나만 아는 흰 산이 있다,라고
호숫가 저녁놀 옆에서 중얼거린 순간
깃털 하나가 눈에 띄었다
주워들고 호수에 떠 있는 오리들을 헤아려본다
누구의 어디를 채워주던 깃털일까?
흘려야만 해서 흘린 걸까? 흘려서 혹시 아픈 걸까?
손가락 하나를 접은 자리에
깃털을 대본다
손가락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깃털손가락 하나
이번엔 손가락을 모두 그대로 두고
깃털을 대본다
손가락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깃털 하나
어느 편이 생을 지키는 데 유리할까?
지금은 알 수가 없다
지금은
언제나 알 수가 없다
어쩌면 그래서 생은 나아간다
나만 아는 흰 산이 있다고 중얼거리면서
나만 알고 있다고 믿는 흰 산 쪽으로
*시집/ 내 따스한 유령들/ 창비
작은 신이 되는 날 - 김선우
우주먼지로 만들어진 내가
우주먼지로 만들어진 당신을 향해
사랑한다,
말할 수 있어
말할 수 없이 찬란한 날
먼지 한점인 내가
먼지 한점인 당신을 위해
기꺼이 텅 비는 순간
한점 우주의 안쪽으로부터
바람이 일어
바깥이 탄생하는 순간의 기적
한 티끌이 손잡아 일으킨
한 티끌을 향해
살아줘서 고맙다,
숨결 불어넣는 풍경을 보게 되어
말할 수 없이 고마운 날
# 김선우 시인은 1970년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강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96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도화 아래 잠들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녹턴>, <내 따스한 유령들>이 있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땅거미 질 무렵 - 김유석 (0) | 2021.10.31 |
---|---|
곳,곳 가을 - 이은심 (0) | 2021.10.31 |
불가능한 휴식 - 임곤택 (0) | 2021.10.30 |
이발사의 세번째 가위 - 박지웅 (0) | 2021.10.30 |
죽는 것도 개운할 때 - 이성배 (0) | 2021.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