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담는다 - 정세훈
곡기를 끊은 지 나흘 된
애완 노견 몽실이가
내 눈에
무언의
제 눈을 맞춘다
하루 종일 눈을 감고
사경을 헤매다가
간혹 나를 바라보며
가깝고도 머나먼 눈을
고요히 맞춘다
사랑했다고
사랑한다고
그리고
죽어서도
살아 사랑하겠다고
모든 생
마치고 가는
눈물 젖은
늙은 눈동자
그 어느 팔팔했을 적
총명했던 눈망울보다
더
뜨거운 눈 맞춤으로
물 한 방울조차 거부하는
주검의 길 가는 그 길을
그저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는
나의 마음을
고이, 담는다
*시집/ 동면/ 도서출판 b
가을 아침 - 정세훈
그리운 사람이 그리운 가을 아침
새벽 일터로 나가기 위해
아침 때 이른 신을 신는다
어느새 꼿꼿하던 내 등은 굽었다
신도 등이 굽듯 낡았다
등을 구부리지 않고
꼿꼿하게 편 채로
신을 탁탁 꺾어 신고 집 나서던
팔팔했던, 중년
가을 아침을
이제 내가 지켜주지 않아도 될
나의 손때 묻은 현관이 배웅한다
늙어가는 나 자신으로부터
그리운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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