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마음을 담는다 - 정세훈

마루안 2021. 10. 27. 22:09

 

 

마음을 담는다 - 정세훈


곡기를 끊은 지 나흘 된
애완 노견 몽실이가
내 눈에
무언의
제 눈을 맞춘다 

하루 종일 눈을 감고
사경을 헤매다가
간혹 나를 바라보며
가깝고도 머나먼 눈을
고요히 맞춘다 

사랑했다고
사랑한다고
그리고
죽어서도
살아 사랑하겠다고 

모든 생 

마치고 가는
눈물 젖은 

늙은 눈동자


그 어느 팔팔했을 적
총명했던 눈망울보다 


뜨거운 눈 맞춤으로 

물 한 방울조차 거부하는
주검의 길 가는 그 길을
그저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는
나의 마음을


고이, 담는다

 

 

*시집/ 동면/ 도서출판 b

 

 

 

 

 

 

가을 아침 - 정세훈

 

 

그리운 사람이 그리운 가을 아침

 

새벽 일터로 나가기 위해

아침 때 이른 신을 신는다

어느새 꼿꼿하던 내 등은 굽었다

신도 등이 굽듯 낡았다

 

등을 구부리지 않고

꼿꼿하게 편 채로

신을 탁탁 꺾어 신고 집 나서던

팔팔했던, 중년

 

가을 아침을

 

이제 내가 지켜주지 않아도 될 

나의 손때 묻은 현관이 배웅한다

 

늙어가는 나 자신으로부터

그리운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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