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음악이 있다면 영원히 - 정경훈

마루안 2021. 10. 26. 22:26

 

 

음악이 있다면 영원히 - 정경훈

 

 

그렇게나 예뻤던 가을에 낙엽처럼 울상이었던 사람

 

두르지 못한 살을 그리워하는 그 사람, 뼈만 걸치고는 춤을 춘다 그 사람이 이 사람이다 이 사람이 그를 아끼고, 굵다가 앙상해진 어깨를 타고, 흘러 흘러 세계는 동질이 된다 그는 오래 삭힌 홍어를 씹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나는 짧게 들은 콧노래와 융합되어 그의 음악을 삼킨다 가을의 독서가 일제의 잔재라면 가을의 음악은 무엇의 제국이란 말인가 무엇의 의미를 찾다가 울상으로부터 일그러진다

 

낙엽의 짓거리는 파동이, 그 사람을 애쓰게 한다

 

 

*시집/ 아름답고 우아하기 짝이 없는/ 문학의전당

 

 

 

 

 

 

마로니에 공원 - 정경훈


비둘기가 고개를 둘러대고 있다
누군가가 어깨를 툭 치고 그렇게 뒤를 돌아보면 비둘기는 백색이었다
날아오른다
말끔하게 바둑돌을 부리에 물고

다시 날아오른다 그 사람의 발길질 때문에

핫도그 가게 앞에만 서면
폭력의 재해가 맴돌았던 예술들이 매대에 놓여 있다
그 역사를 전범하는 희극이 소시지처럼 숨어 있다
이모, 설탕 묻혀주세요 케첩 이거 쓰면 되는 거죠
누군가는 밀고에 의해 누군가는 이모의 권력에 의해
핫도그를 사 먹는다

이토록 간단한 과정이었으나
씹히지 않는 대물림은 구역질을 일으키기에
내 옆과 나와 너는
핫도그를 겨우 사 먹어야 했던 가난한 자였으리라

날아갔던 비둘기는 돌아오지 않고
그 발길질이 예술가였음을 빙자하였으니

예술이라는 건
무엇보다 무거운 탓에 내려놓지 못하는 것
가라는 건
가야 할 길을 잃어서 갈 곳이 없다는 것

이모, 요즘 들어 핫도그가 작아진 건 왜일까요

 

 

 

 

# 정경훈 시인은 1996년 서울 출생으로 10여 년 동안 축구 선수로 활약했다. 2019년 시집 <저 말고 모두가 노는 밤입니다>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아름답고 우아하기 짝이 없는>이 두 번째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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