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징검다리 버튼 - 김영진

마루안 2021. 10. 26. 22:17

 

 

징검다리 버튼 - 김영진


소식 알 길 없던 이와 다시 만나 걸으니 마음도 붉다

어금니 앙다문 날 많아 꺾인 사랑 잊은 지 오래

새로운 일이 느티나무 잎만큼 무성히 자랐다

안부 물을 일 없이 지내온 삶 그러다 오늘, 서로 배낭 멘 채 약속이라도 한 듯 마주쳤다

"시간 흘러도 그대로네"로 시작한 이야기, 말이 오솔길 따라 오르내렸다

다른 길 지나왔어도 물길은 서로 만나고 그때로 돌아갈 일 없어도 지나갈 다리 놓을 때 있다

 

계곡 저편으로 건널 징검다리 시선 둔 채 흔들리는 가지처럼 잠시 서성였다

발 디디면 현실로 돌아가는 저 돌다리 버튼, 우리보다 노을이 먼저 밟고 지나갔다

 

 

*시집/ 영구임대아파트 입주 문의/ 문학의전당

 

 

 

 

 

 

곱으로 갚아줄 궁리하다가 - 김영진


넌 모자라다는 말 수화기 건너왔다
힘껏 살아온 날 몰아세웠다

오히려 난 사과했다
그렇다고 술잔 앞에서 악 따위 쓰지 않았다

사람에게 잘 눌리는 나는
질경이와 같은 피가 흘러 발에 밟히고도 곧잘 일어났다

종일 걷다 방파제에 앉아 바라본 바다

해안선이 파도에 사라졌다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초라한 내 모습 잊으려 해도 물결 위로 자꾸 튀어 올랐다

"참지 마! 비난을 견딜 나이란 없어!
인정받기 위해 언제까지 속 태울 거야?
빈틈없으려는 강박이 문제야!"

누군가 바다 속에서 걸어 나와 소리쳐 주길 바랐다
바다 향해 소리 질러도 묵음이 돌아왔다

곱으로 갚아줄 궁리하다가 올레길 다시 걸었다

 

 

 

 

 

*시인의 말

 

'별일 없음',
나 역시 '아무 일 없는 하루'가 이어지길 바랐다.

젊은 의사는 아버지에게서 암세포를 발견했다.
어머니는 더욱 수척해졌다.
꾸밈이나 양념이 필요 없는 말을 주로 하던 아버지는 말수가 줄었다.

묻지 않아도 아는 일이 많아진다.
사랑하는 가족들.
글 속에 사는 모두가 아무 일 없이 지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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