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겁내지 말고 - 이시백

마루안 2021. 10. 22. 22:22

 

 

겁내지 말고 - 이시백  


혹시 말이지 이런 생각이 든다면 말이지. 
사는 동안 나는 깨끗하게 살았다고
속으로만 생각하자 그 말이지.
누군들 정갈하게 살고 싶지 않았겄어
살다보이 억척도 부리고 용심도 쓰면서 사는 거지.
삶의 기준이 있는 듯이 떠들면
나의 가치가 올라가는감?
원래 인생은 낙엽처럼 시들며 단풍이 드는 거잖소.
이제 나이가 있으이 아량을 먼저 가져야 혀.
다 챙겨야 만족한다면 옆사람이 얼마나 경계하겄어.
허니 겁내지 말고 먼저 양보혀.
다 똑같이 단풍들고 시드는 과정인디
뭘 그리 섧다 하리까.
칭칭 동며맨 내 안의 욕구
이제 놓아주고 평지로 돌아가야지.
높은 산이 아니라 낮은 구릉에 이르러
얕은 무덤으로 나는 갈 거야.
속으로만 쬐금 깨끗하게 살았다 말할 거야.


*시집/ 널 위한 문장/ 작가교실

 

 

 

 

 

 

이끼의 노래 - 이시백


난 돌아눕지 못한 채 평생을 산다.
낮은 자리에서 태어나
낮은 자리에서 생을 마감할 거다
나무처럼 크지 않으니
멀리 바깥 구경 한 번 못했다
그저 딱딱한 바닥에 붙어
넉넉한 곡기 없이 버팅기는 중
비가 내릴 때까지 참고 참았다가
마른 맨몸 벗어나곤 한다
아침저녁으로 이슬이 내리면
한 모금 목을 축이듯
급식센터가 나를 살린다
근근히 허기를 지우는 하루 한낮
내 일상이 그렇다
포기하지 못하고
무심한 바위를 붙잡고 있는 나
바위는 선사시대부터 있었다

 

 

 

*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그들을 만나려 한다.

글이 징검다리가 된다면
다행이다.

수수꽃 향기
실개천을 건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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