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 육근상
풀벌레 울음 가슴을 찢는 밤이다
먹감나무 이파리가 먼 길 다녀온 듯
툇마루 내려앉으며 적막을 깬다
나는 바람벽 비스듬히 기대어
안방 바라보는데
한숨인 듯 앓는 소리인 듯
가쁘게 몰아쉬던 숨소리도 없이
텅 빈 방이
컴컴하게 뚫어놓은 굴속 같다
나지막이 엄마 하고 부르니
아랫목 깔아놓은 이불이
자다 꿈을 꾼 듯
누구여 애비여 언제 들어온겨
아이고 깜짝 놀랐네
또 꿈속으로 들어간 듯 찌푸린 미간으로
고욤나무 가지 걸린 달이 노랗게 익어간다
나는 컴컴한 빈방 향하여
엄마 하고 부르면
엄마는 바람벽에서 내려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 하지 않는다
내가 다시 엄마 하고 부르니
텃밭 풀벌레가 나를 따라 하는 듯
엄마 하고 우는 밤이다
*시집/ 여우/ 솔출판사
가을 - 육근상
바라보기만 해도 쨍그랑 깨질 것 같은 하늘 바라보다
함께 걷는 계족산 뱉어내는 가랑잎이라는 말 하도나 슬퍼
아 죽고 싶은 아침이로다 그런 줄 알아라 각시한테 문자 넣었다
가을은 맑고 차가운 기운으로 익어
살진 송어 떼 같은 후박나무 이파리가 자맥질하듯 차고 오르는
봉황봉 암자 들어설 무렵이었을까
내가 계곡물 손 적셔 만추의 얼굴 씻어낼 무렵이었을까
외출하려면 문간까지 따라 나와 손 흔들어 배웅하던 각시 답신 왔다
살강 밑 항아리 녹파주 익는 소리 들을 만하다 그런 줄 알아라
# 육근상 시인은 1960년 대전 출생으로 1991년 <삶의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절창>, <만개>, <우술 필담>, <여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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