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조각 - 이규리
축제는 축제를 견디려 종일 서 있었다
잠시 그들의 일부가 되어주기로 하였으므로
음악이 흐르고
불빛이 내리고
오늘 나는 잘 죽어야 한다
하루를 사는 일
이건 녹지 않으려 안간힘 쓰던 저들 삶과 얼마나 다를까
잠시를 영원으로 아는 눈먼 사람 말이네
모든 날들인 하루
그래 하루라는 건 결코 허한 시간이 아닌 거야
부재하고 싶었어 멸하고 싶었어 저 실상으로부터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목이 가늘어지지만
나는 서서히 사라져야 한다
어떻게 죽는 방식이 사는 이유가 되었니
카펫을 적시며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적막을
투명하다는 건 힘이 될 수 없지만
어떤 패도 지킬 수가 없지만
버티어온 힘으로
그러니 다시 고쳐서 말해보자
죽음이 이미 거기
있었으므로,
*시집/ 당신은 첫눈입니까/ 문학동네
그리고 겨울, - 이규리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
끝을 모른다는 것
길 저쪽 눈부심이 있어도 가지 않으리라는 것
가지 못하리라는 것
그저 살아라, 살아남아라
그뿐
겨울은 잘못이 없으니
당신의 통점은 당신이 찾아라
나는
원인도 모르는 슬픔으로 격리되겠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옹호하겠습니다
이후
저는 제가 없어진 줄 모르겠습니다
# 이규리 시인은 1955년 경북 문경 출생으로 계명대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앤디 워홀의 생각>. <뒷모습>,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당신은 첫눈입니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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