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장례식에 오지 마라 - 김해동
길바닥에 납작하게 눌린 고양이
말라붙은 주검을 시위하고 있다
누구나 한번은
세상 가장 슬픈 기호가 되어야 한다
삶이란 야생고양이처럼
세상 어디든 헤집고 다니다가
홀로 남겨졌을 때
언제 떠날지 모르는 차 밑에서
노심초사하다가
또 다른 차의 밑바닥으로 파고드는 것
함께해준 많은 시간들은 참으로 고마웠고
그 시간들 때문에
내 시간들을 채울 수 있었다
나는 내일 또 담장을 뛰어오를 것이고
한순간 헛디딘 발밑으로
천길 고요를 볼 것이다
내 장례식에 오지 마라
*시집/ 칼을 갈아 주는 남자/ 순수문학
그립다는 것은 - 김해동
그립다는 것은 실체가 없어도 스스로 충만해지는 것
그립다는 것은 가슴 속에 불덩이 하나 품고 불면의 밤을 지새우는 것
그립다는 것은 야생화를 뿌리채 뽑아 아무도 읽지 않는 시집 속에 끼워두는 것
그립다는 것은 다시는 볼 수 없는 인연을 연연해하며 해결할 수 없는 세월을 살아가는 것
그립다는 것은 못다 한 말들이 바닷물처럼 출렁거리다가 무심코 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것
그립다든 것은 몸에 가시를 박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장미처럼 모순으로 가득한 삶을 영위하는 것
그립다는 것은 꺼져가는 촛불 같은 생명을 붙들고 살 속 깊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수액을 바라다보는 것
그립다든 것은 이승의 모든 물기를 태우고 남은 주검을 다시 가슴에 묻고 문득 밤하늘의 별들을 올려다보는 것
# 김해동 시인은 경남 진해 출생으로 홍익대 대학원 미술학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순수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고 시를 연재했다. 시집으로 <비새>, <칼을 갈아 주는 남자>가 있다. 창원대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고 다수의 개인전을 연 바 있는 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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