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내 장례식에 오지 마라 - 김해동

마루안 2021. 10. 18. 22:45

 

 

내 장례식에 오지 마라 - 김해동

 

 

길바닥에 납작하게 눌린 고양이

말라붙은 주검을 시위하고 있다

 

누구나 한번은

세상 가장 슬픈 기호가 되어야 한다

 

삶이란 야생고양이처럼

세상 어디든 헤집고 다니다가

홀로 남겨졌을 때

언제 떠날지 모르는 차 밑에서

노심초사하다가

또 다른 차의 밑바닥으로 파고드는 것

 

함께해준 많은 시간들은 참으로 고마웠고

그 시간들 때문에

내 시간들을 채울 수 있었다

 

나는 내일 또 담장을 뛰어오를 것이고

한순간 헛디딘 발밑으로

천길 고요를 볼 것이다

 

내 장례식에 오지 마라

 

 

*시집/ 칼을 갈아 주는 남자/ 순수문학

 

 

 

 

 

 

그립다는 것은 - 김해동

 

 

그립다는 것은 실체가 없어도 스스로 충만해지는 것

그립다는 것은 가슴 속에 불덩이 하나 품고 불면의 밤을 지새우는 것

그립다는 것은 야생화를 뿌리채 뽑아 아무도 읽지 않는 시집 속에 끼워두는 것

그립다는 것은 다시는 볼 수 없는 인연을 연연해하며 해결할 수 없는 세월을 살아가는 것

그립다는 것은 못다 한 말들이 바닷물처럼 출렁거리다가 무심코 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것

그립다든 것은 몸에 가시를 박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장미처럼 모순으로 가득한 삶을 영위하는 것

그립다는 것은 꺼져가는 촛불 같은 생명을 붙들고 살 속 깊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수액을 바라다보는 것

그립다든 것은 이승의 모든 물기를 태우고 남은 주검을 다시 가슴에 묻고 문득 밤하늘의 별들을 올려다보는 것

 

 

 

 

# 김해동 시인은 경남 진해 출생으로 홍익대 대학원 미술학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순수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고 시를 연재했다. 시집으로 <비새>, <칼을 갈아 주는 남자>가 있다. 창원대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고 다수의 개인전을 연 바 있는 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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