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바람꽃 - 김용태

마루안 2021. 10. 11. 21:23

 

 

바람꽃 - 김용태

 

 

날선 감정들도

세월 속에선 모두 다 풍화를 겪는 것인지

 

그러다가 하루에도 수만 번씩 감정은 물비늘처럼

흔들려

가지 않겠노라며 다짐해 놓고도 가만히 손 넣어 보면

어느덧 모질지 못한 마음은 그대에게로 가 있고

늘 기다려 맞던 그 곳으로 허망한 발길은 버릇처럼 향한다

한 때는 내 가슴 가장 깊은 곳에 두었던 사람

훗날,

어느 생 어느 별에선가 만나도 낯설지 않을 얼굴

뜨거운 이름이었던가

모든 별들 바람에 쓸리어 간 자리마다

하나 둘 당신 얼굴 바람꽃 되어 피어나

밤이면 밤마다 하늘가에 다가고픈 간절한 마음은

삼백예순날 가슴에서 그댈 비워낸 날이 없었다

말없이 그렇게 당신 보내고

살구나무 꽃 그림자 어른거리는 밤이 오면

난 문둥이처럼 서러워져

두 무릎 껴안고 자전하는 지구의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시집/ 여린히읗이나 반치음같이/ 오늘의문학사

 

 

 

 

 

 

풍장(風葬) - 김용태

 

 

봄과 가을뿐인 먼 별에서

철모르는 초식동물 되어 살고 싶다고,

유언인 양 놓아 보냈던 말이, 미처

당신께 가닿지 못하고

이 밤

어느 가난한 집 울안

환한 앵두꽃으로 피었다 지는지

해조음으로 울다 지쳐

쓰린 소금으로 영글다 터지는지

바람에 실려 보냈던 그 말

이제 풍장 되어 흰 뼈만 남아 서성이는데

사람아

봄과 가을뿐인 먼 별에서

초식동물을 꿈꾸던 나도

이제 가고 없느니

 

 

 

 

*시인의 말

 

마흔 넘어 어렵게 얻은

자식이라고 했다

 

휠체어를 미는

칠순 노모의 호흡이 거칠다

 

두 발로 서는 것은 그만두더라도

엄마 소리, 한번 들어 보았으면 하는 기대도

이미 접은 지 오래되었다며

그저 아들보다 하루만 더 살다 가는 것이 소원이라는,

그 거룩한 바람이

우황(牛黃)처럼 여물어 가는

봄과 여름의 경계에

너를 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