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꽃 - 김용태
날선 감정들도
세월 속에선 모두 다 풍화를 겪는 것인지
그러다가 하루에도 수만 번씩 감정은 물비늘처럼
흔들려
가지 않겠노라며 다짐해 놓고도 가만히 손 넣어 보면
어느덧 모질지 못한 마음은 그대에게로 가 있고
늘 기다려 맞던 그 곳으로 허망한 발길은 버릇처럼 향한다
한 때는 내 가슴 가장 깊은 곳에 두었던 사람
훗날,
어느 생 어느 별에선가 만나도 낯설지 않을 얼굴
뜨거운 이름이었던가
모든 별들 바람에 쓸리어 간 자리마다
하나 둘 당신 얼굴 바람꽃 되어 피어나
밤이면 밤마다 하늘가에 다가고픈 간절한 마음은
삼백예순날 가슴에서 그댈 비워낸 날이 없었다
말없이 그렇게 당신 보내고
살구나무 꽃 그림자 어른거리는 밤이 오면
난 문둥이처럼 서러워져
두 무릎 껴안고 자전하는 지구의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시집/ 여린히읗이나 반치음같이/ 오늘의문학사
풍장(風葬) - 김용태
봄과 가을뿐인 먼 별에서
철모르는 초식동물 되어 살고 싶다고,
유언인 양 놓아 보냈던 말이, 미처
당신께 가닿지 못하고
이 밤
어느 가난한 집 울안
환한 앵두꽃으로 피었다 지는지
해조음으로 울다 지쳐
쓰린 소금으로 영글다 터지는지
바람에 실려 보냈던 그 말
이제 풍장 되어 흰 뼈만 남아 서성이는데
사람아
봄과 가을뿐인 먼 별에서
초식동물을 꿈꾸던 나도
이제 가고 없느니
*시인의 말
마흔 넘어 어렵게 얻은
자식이라고 했다
휠체어를 미는
칠순 노모의 호흡이 거칠다
두 발로 서는 것은 그만두더라도
엄마 소리, 한번 들어 보았으면 하는 기대도
이미 접은 지 오래되었다며
그저 아들보다 하루만 더 살다 가는 것이 소원이라는,
그 거룩한 바람이
우황(牛黃)처럼 여물어 가는
봄과 여름의 경계에
너를 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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