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노을 지게 - 하외숙

마루안 2021. 10. 10. 19:37

 

 

노을 지게 - 하외숙

 

 

그가 평생 해온 일은 무릎 꿇는 일이었다

 

이삭 팬 보리처럼 깔끄러운 자식들 타관으로 떠나보내고

밭장다리로 남대문 시장 비좁은 계단 오르내리는 사이

꽃이 피는지 잎이 지는지 청춘은 돌개바람처럼 휘리릭 지나갔다

 

작달막한 키 짓누르는 등짐 앞에 지겟작대기 하나로 버텼을,

그가 바닥을 치고 일어설 때마다 종아리에 푸른 힘줄 돋을새김하고

절뚝이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곤 했다

 

그가 지게를 닮아 가는지 지게가 그를 닮아 가는지

굽은 등에서 뻗어 나온 지겟가지

양쪽 어깨 착 달라붙어 내려놓지 못하는 굴레

 

구부정한 등에 노을 한 짐 지고 허우적허우적 걸어간다

 

 

*시집/ 그녀의 머릿속은 자주 그믐이었다/ 시와반시

 

 

 

 

 

 

개망초 - 하외숙


소소한 바람에 자주 흔들렸네
망할 망으로 태어나 망친 날도 많았네

바람을 원망했지만 기댈 곳도 바람뿐
햇살로 둘러싸인 지붕 없는 들판이 나의 울타리

씨앗 하나 홀씨 하나 길이 되었네
길 따라 바람 따라 무리 지어 피어난 하얀 백성
그 속에는 나의 노란 영혼인 침묵 담겨 있네

길 위에는 항상 별이 떠 있었네
그 별에는 그리움이 자라고 있었네

소슬바람처럼 무명의 길로 다시 가야지
호명되지 않아도 묵묵히 혀꽃 피우며

주름진 골짜기마다 가을이 깊어 가네

 

 

 

 

*자서

 

바람의 본적지를 찾아

결국, 여기까지 왔다

 

내 몸 통과한 뜨거운 한 줄

시원하게 내갈기고 싶다

 

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