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발광고지(發狂高地) - 서윤후

마루안 2021. 10. 10. 19:30

 

 

발광고지(發狂高地) - 서윤후


버려진 산소호흡기를 핥다가
어린 고양이 입김 서리는 것을 본다

무언가 닦아내면 어떤 것이 사라질 것만 같다
이를 모든 것이라고 부르는 아른거림만이
유일한 궁금증

또, 또 지리멸렬한 날씨

무너진 성곽이 더이상 관여하지 않는
잘 닦아놓은 미래가 있었다
모두가 돌아오게 되는 반환점으로
숨 쉬는 것을 가여워하게 되는 전개를 펼치고
그 사이사이의 안개

오리무중의 발진이다

창광하는 밤벌레들처럼 거리로 나온
아침 인간의 얼굴을 구경한다
전망할 수 없는 표정들에 휩싸여 있으면
어린 고양이의 숨 같은 건 별로 중요해지지 않는다

또, 또 어두워지려는 심장

들리지 않는 것을 어둡게 하면
꿈 밖으로 나와 소리치는 빛
환호는 환희의 별미라도 되는 듯이
인간을 재주넘는 (영혼, 마음 다음에 생각나는 것) 취미 활동

무덤가의 구구절절한 침묵을 듣는다
사랑은 절판된 기억으로 세워져 있다
그들은 모두 옛사람 같다
세련된 스카프를 해도

영어로 된 개 이름을 불러도

죽음이 신간처럼 여전히 새롭다는 사실은
새로울 게 없다
푯말의 역사를 읽는다든지
소문이 눈앞 미래로 유인한다든지 하는

장례식장에 막 납품된 수육의 뜨거운 김
아무도 배고프지 않은 곳에서 해치워나가게 되는

무엇이 신비로운 감옥을 짓는가
그 안에서 알고 싶어하게 된 것은 무엇인가

또, 또 아름답기 위해 사라지는 것들

어제 입었던 옷을 입는다
이변이 없는 한 비가 내리지 않을 것 같다
몇 개의 부음을 화면에서 쓸어넘긴다

열몇 개 와이파이 중에
비밀번호 들어맞는 게 없다
매일 두절되어도 끝나지 않는 것이 있어

어두운 것 중에 가장 어둡지 않은
그런 머리색을 가진 학생이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전속력으로 달려나간다

 

 

*시집/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문학동네

 

 

 

 

 

 

밀랍 양초를 켜둔 청록색 식탁 - 서윤후

 

 

계단이 쌓여가는 것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 혼돈의 목적. 식탁에서 먼저 일어나는 당신의 의자가 바닥을 긋는 소리. 시간에 반듯하게 자르고 싶은 절취선이 생긴다. 가장 소중한 것을 꺼내오고 싶은 것. 그렇게 우리는 기울어져서 서로를 다시 기대는 최초의 흉물로서의 장식품. 마음에게도 기교가 생겨서 슬픔을 그치게 하는 나팔을 불고, 어떤 여름날의 피크닉을 화두로 오늘 치 눈물을 잠근다. 창밖엔 바람이 흔들릴 언덕의 나무를 고르는 중. 둘뿐인데 둘만 모르는 기분이 태어나 칭얼거린다. 아귀가 맞지 않는 서로의 계단을 이어가며 우리는 흔들리는 징검다리를 걷는 심정으로, 촛농으로 다시 세운 사람의 얼굴에는 불이 잘 붙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한 줌 불빛을 지키기 위해 싸움을 미룰 수 없게 되었다. 뚝, 뚝 떨어지는 촛농. 은유를 기다리는 장식과 쏟아질 것 같은 샹들리에 아래 여기 두 사람.

 

 

 

 

# 서윤후 시인은 1990년 전북 정읍 출생으로 명지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9년 월간 <현대시>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휴가저택>, <소소소小小小>,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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