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아현동 가구거리 3 - 전장석

마루안 2021. 9. 30. 22:16

 

 

아현동 가구거리 3 - 전장석

 

 

도무지 기분을 맞출 수 없는 동네가 있다

 

사람들 하루 종일 북적이다가 쓰레기 더미처럼

새벽이면 다소곳한 동네 불쑥

석류알 붉은 잇몸을 내미는 동네

 

반짝하던 불빛만큼 반색하는 늘 그 모습이라서

강의 묏등으로 출렁이던 노래

표정 밖으로 기분이 흘러들면

설탕을 듬뿍 묻힌 빵처럼 부풀어 올라

 

그 동네와 가끔 친해지고 싶어

골목을 서성이다 보면

나는 그 동네를 잘 아는 사람 그러다가

더 꼼꼼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나라면

비 오는 가구거리 천막 아래서

가구들의 자세와 나이를 묻고 싶어져

오늘은 정말 무엇이든 축축해져서

 

고양이 발자국도 흉터가 되는 사람에게

바닥까지 내려간 얼굴은

기분이 만든 천성 때문이라고 말하지

 

그를 경유해 가보지 못한 곳이 있다면

임대 딱지 덕지덕지 붙어 있는 가구거리

기억의 잠금장치를 거기서 풀어볼 것

 

오늘 내게 무심코 엎질러진 표정들처럼

 

 

*시집/ 서울, 딜큐사/ 상상인

 

 

 

 

 

 

종로5가 진미육회 3호집 - 전장석

 

 

한 줌의 목숨, 한 컵의 사이다, 한 시절의 꿈이

마주 앉았다 종로5가 육회비빔밥 집에서

 

이 떨떠름한 관계가 두 번째 (  )문항

 

녹두전 냄새가 회벽에 막혀 통곡하고

뜯기지 않는 미래가 과거로부터 돌출된다

밖은 어스름이지만

불이 붙기 시작한 놋그릇, 육회의 저 선홍빛 처연함

 

도배질을 다시 배우게 된다면

방산시장에서 꽃무늬 벽지를 고르던

아득한 신혼시절도 되돌려질까

한때 우리는 누구나 벽지 위에 벽지를 덧댄

삶이었지 초록의 무늬였고 금박의 실크였지

 

벽의 두통과 벽의 내분과 벽의 뒤틀림을

노래와 은유로 다만 낙서했지만

잉여의 시간들을 어디에다 붙일까 망설이는 지금은

시뻘건 자창(刺創) 한 접시

 

서로의 얼굴을 분탕질하듯 쓱쓱 뭉개진

한 시절과 한 목숨이

언젠가는 핏물보다 붉게 벽에 스밀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