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전생 - 홍성식

마루안 2021. 9. 29. 19:24

 

 

전생 - 홍성식

 

 

먼지라고 했다

아니, 저건 먼저 떠난 사람들의 눈물이야

사막이라고 했다

천만에, 길을 잃은 자들의 당혹일 걸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내 별의 고리를 보았다

아버지가 보낸 추기경들이 진노했다

비밀을 발설한 자는 손톱이 뽑혔다

 

삼십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생일

할머니의 쪽진 머리칼은 더디게 색을 잃어갔다

육만 마리 낙타의 주인인 그녀의 아들

마흔여섯 총독들은 달마다 조공을 바쳤다

 

목소리 굵은 이웃 별 사신이 오던 날

먼지 속에 떠 있던 헤픈 여자들이 웃었다

망측하게도 일처다부가 보편인 별

 

아버지는 엄마라는 호칭을 경멸했다

할머니는 아들만을 사랑한다고 했다

둘의 다툼 앞에서 나는 오줌을 지렸다

깨어나지 못할 토성에서의 꿈.

 

 

*시집/ 출생의 비밀/ 도서출판 b

 

 

 

 

 

 

출생의 비밀 - 홍성식


범선으로 요하네스버그를 떠나 마다가스카르에 도착한 아버지는 목덜미에 나비를 문신한 인도계 아프리카인. 파타고니아에서 태어나 해변으로 밀려온 혹등고래를 치료해준 엄마는 마드리드 뱃사람과 아르헨티나 원주민의 피가 섞인 붉은 얼굴의 메스티소였다.

바나나를 따서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군도를 오가던 아버지는 초록빛 빙산을 타고 보라보라섬 사촌언니를 찾아온 엄마를 에메랄드빛 산호초가 꺼이꺼이 우는 타히티 북부 갈대숲에서 만났다. 1871년 여름이었다.

엄마는 망고스틴 여섯 개를 건네는 아버지의 흙 묻은 손바닥을 얼굴로 가져가 달콤하게 핥았다. 둘이 몸을 섞은 얕은 바다에선 일만 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는 맹그로브 사이로 뜨거운 바람이 웅얼거렸다. 원주민들은 뜨지 않는 달을 기다렸다.

여섯 달 후. 아버지는 이슬람 양식으로 조각된 여신상을 실은 목선을 타고 바그다드로 떠났다. 움직이는 섬에 오른 엄마 역시 북서쪽으로 흘러갔다. 외눈박이 숙부가 야자유 일곱 병을 들고 나와 배웅했다. 동아시아 낯선 항구에 도착한 엄마는 백 년 후 사내아이를 낳았다. 나는 1971년 부산에서 첫울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