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내 말은 - 김상출
눈물이 흘러나오는 길을 따라
그 안쪽 끝까정 들어가보믄
거기 분명 작은 읍내에 어울릴 법한
이쁜 간이우체국 하나 있을 거여
자네가 이래 몇 날 며칠 우는 거는
거기서 자꼬 슬픈 편지를 쓰고 있는
누가 반드시 있는 거여, 하믄
그러니께 내 말은 말이여 자네도
이렇게 자꼬 우지만 말고
거기로 편지를 쓰라 이거여
인자, 편지 고만 보내라고
울 만큼 울어서 눈물 다 말라부렀다고
또 머이냐
인자는 나도 좀 살아야 쓰것다고
아 언능 쓰란 말이여
*시집/ 다른 오늘/ 한티재
세월을 만나다 2 - 김상출
마루에 놓인 빈 박스는
서너 켜 더 올라가 있고
우편함에는 오랜만에
KT 요금고지서가 담겼다
늙은 개는 짖어보려고
두어 번 목을 추스리다 그만둔다
주인은 보이지 않고
이웃집 벽을 타고 오르는 나팔꽃들
초가을 따가운 햇살에
있는 대로 늘어졌다
목울대 언저리에 그렁그렁 걸리던
영감의 잔기침 소리도 없이
완벽한 적막이다
세월은 저 아득한 어디에서
이렇듯 기막힌 적막을 데려와
모지라진 대문짝 밑으로
슬며시 밀어놓고 홀로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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