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러니까 내 말은 - 김상출

마루안 2021. 9. 29. 19:16

 

 

그러니까 내 말은 - 김상출


눈물이 흘러나오는 길을 따라
그 안쪽 끝까정 들어가보믄
거기 분명 작은 읍내에 어울릴 법한
이쁜 간이우체국 하나 있을 거여

자네가 이래 몇 날 며칠 우는 거는
거기서 자꼬 슬픈 편지를 쓰고 있는
누가 반드시 있는 거여, 하믄

그러니께 내 말은 말이여 자네도
이렇게 자꼬 우지만 말고
거기로 편지를 쓰라 이거여

인자, 편지 고만 보내라고
울 만큼 울어서 눈물 다 말라부렀다고
또 머이냐
인자는 나도 좀 살아야 쓰것다고

아 언능 쓰란 말이여

 

 

*시집/ 다른 오늘/ 한티재

 

 

 

 

 

 

세월을 만나다 2 - 김상출

 

 

마루에 놓인 빈 박스는

서너 켜 더 올라가 있고

우편함에는 오랜만에

KT 요금고지서가 담겼다

늙은 개는 짖어보려고

두어 번 목을 추스리다 그만둔다

 

주인은 보이지 않고

이웃집 벽을 타고 오르는 나팔꽃들

초가을 따가운 햇살에

있는 대로 늘어졌다

 

목울대 언저리에 그렁그렁 걸리던

영감의 잔기침 소리도 없이

완벽한 적막이다

 

세월은 저 아득한 어디에서

이렇듯 기막힌 적막을 데려와

모지라진 대문짝 밑으로

슬며시 밀어놓고 홀로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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