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이런 날이 왔다 - 이시백

마루안 2021. 9. 30. 22:42

 

 

이런 날이 왔다 - 이시백  


사람이 존귀한 세상에
사람이 대접받기 어려운 세상이 왔다
친척 집에 가는 것도 민폐이고
결혼식에 상갓집에 가는 것도
민폐가 되는 세상
날마다 달마다 이리 사는데
제발 년년세세 그러지 않기를
우울이 넘치는 요즈음
새삼 개들이 위대해 보인다
2m의 목줄에 묶인 채  끊임없이 짖고
꼬리를 흔드는 행동이 대단하다
혹시 나는 어떤 목줄에
묶여 있나 따져 본다
몇 푼 안되는 월급에 묶이고
동호회에 묶이고
함량 미달인 건강에 묶이고
찾아보면 너무 많다
사실 중요하게 묶이는 게
더 있는데 양심이 걸린 문제라
차마 못 적겠다

*시집/ 널 위한 문장/ 작가교실

 

 

 

 

 

 

지천명 - 이시백

 

 

고백하건데 언제나 내가 품은 생각은

누런 황금을 거침없이 차지하는 거였다

막연하게 언젠가는 꼭 차지하리라는

믿는 구석이 구름 위로 지금도 떠돈다

 

내 안에 든 수많은 돌멩이가 나를 지탱하는

찰진 뼈인 줄도 모르고

나는 황금에만 눈이 어두워 거리를 헤매인다

물기 빠진 뼛조각 겨우 잇고 다니면서도

아직도 청춘인 줄 알고 푸르른 시절만 떠올린다

 

하늘을 이해하는 나이임에도

땅속에 얽매여 정확히 말하면

자본에 눈이 멀어 둥근 것만 주변에 담았다

나를 옭매는 포박이 여기저기 바람결에 흩날린다

 

이제 이 노릇을 어찌할지 지금 고민 중이다

 

 

 

 

# 이시백 시인은 전남 강진 출생으로 서울시립대를 졸업했다. 2002년 <문학과창작>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숲 해설가의 아침>, <아름다운 순간>, <널 위한 문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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