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 육근상
대밭에 흰 새 울다 날아갔다
천둥 번개 불러들인 대추나무도 슬퍼하였다
강 마을 들어서는 샛길은 또랑 만들어 며칠 수근거렸다
땡볕이 채마밭에 날개짓 털었다
마루턱 기대 댓잎이 쓰는 글 몇 줄 읽다
받아쓸 요량으로 고쳐 앉으면
풀잎은 강물 소리로 흔들리다 울음 터뜨렸다
마루가 걸을 때마다 슬픈 노래로 찌걱거리자
고욤나무가 주렁주렁 매달린 그늘 뒤란에 뿌려놓았다
마당이 바람도 없는 한낮이라 눈부시게 적막하였다
*시집/ 여우/ 솔출판사
볕 - 육근상
품속 같다 무엇이든 끌어안고 있으면 한 생명 얻을 수 있겠다
겨우내 버려두었던 텃밭도 품속 따뜻했는지 연두가 기지개다 뽀족한 입술 가진 호미도 헛바닥 넓은 꽃삽도 품속 그리웠는지 입술 묻고 뗄 줄 모른다 나를 품었던 엄니도 이제 품속 돌아가려는지 양지녘 볕을 있는 힘껏 끌어모으신다
품속 내려놓은 어미 닭이 병아리들 꽁무니 매달고 의젓하게 마당 맴돌고 있다
*시인의 말
나는 또 어느 별에서 생명 얻을 것이니 가는 것 너무 슬퍼하지 마라
비가 오는구나 비가 오시는구나
말씀 남기고 엄니는 저 별로 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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