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너무 낭만적이거나 너무 실용적이거나 - 임후남

마루안 2021. 9. 26. 19:23

 

 

너무 낭만적이거나 너무 실용적이거나 - 임후남

 

 

가까이 숲이 있으면 좋겠어

상추 심을 텃밭이 있어야지

수국 한 그루 심을 정원도 있음 좋겠어

 

가까운 곳에 편의점이 있으면 좋겠어

지하철역은 가까워야겠지

그래도 조용한 곳이었음 좋겠어

 

실용과 낭만이 부딪치는 사이

욕망과 현실이 끓는 사이

집도 아닌 방 한 칸,

꿈은 너무나 비현실적

 

이 색에서 저 색으로

수국 한 그루

변덕스럽게 피고 지는 사이

하이힐 신고

산책하는 사이

 

 

*시집/ 전화번호를 세탁소에 맡기다/ 북인

 

 

 

 

 

 

나무와 몸 사이 - 임후남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걸었다

그림자가 함께 걸었다

며칠 전 내린 눈이 그대로다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눈은 온몸으로 나를 받는다

다정한 눈길은

내가 걸어갔다 오는 사이

어지러워졌다

 

늙어가는 동안

내 육체는 점점 더 무거워진다

생각하면 단 한 번도

나는 가벼운 몸을 가진 적이 없다

내 몸을 재촉하고

다른 이의 몸을 앞지르며

더 큰길로 달려나가는 동안

나는 믿었다, 가벼운 몸으로

아름답게 날아오를 수 있으리라고

 

눈길을 걸을수록

그림자가 짧아졌다

평생 젖은 몸이

눈길에 더 젖었다

내 몸은 너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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