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당신의 노동은 안녕하신가요? - 김경희

마루안 2021. 9. 26. 19:29

 

 

 

작년 말 한 후배가 직장에서 잘렸다. 표면상으로는 권고 사직이지만 코로나가 터지면서 회사가 워낙 어려워 하나둘 떠나는데 버티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반 년 이상 월급을 삭감하면서 버텼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회사 내 분위기가 어차피 짤릴 텐데 알아서 나가라였단다.

 

근로기준법으로 보면 부당해고에 해당하지만 회사는 그 방식을 취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도 이 후배는 약간의 위로금과 퇴직금을 정산 받을 수 있었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회사가 망하면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직장을 잃는 경우도 있다.

 

노동자를 보호하는 근로기준법이 있지만 이 법도 어느 정도 큰 회사에 해당되는 법이다. 가령 상시 노동자가 5인 이하라면 연차 휴가는 먼 나라 얘기다. 연차 휴가는커녕 주 5일 근무도 지키지 않는 사업장이 수수룩하다. 대그룹에 다니는 직장인들은 노조 활동을 활발하게 하지 않더라도 근로기준법을 잘 찾아 먹는다.

 

정작 근로기준법이 더 절실한 중소 회사 노동자들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일 하다 죽어도 산업재해로 인정 받기 쉽지 않고 비정규직은 언제 그만두라고 할지 몰라 부당한 대우를 감수하면서 근로기준법을 아예 없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최저 임금으로 먹고 살기 힘들어 가능한 야근을 더 해서 월급을 더 받고 싶어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근로기준법 지키지 않아도 좋으니 수입이나 더 늘었으면 하는 것이다. 보호 받아야 할 노동자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 근로기준법이다.

 

이 책은 공인노무사 김경희 선생이 쓴 에세이 형식의 근로기준법 설명서다. 자신이 일하는 사무실에서 상담한 사례를 기본으로 조목조목 어떻게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지를 쉽게 설명해준다. 생각보다 몰랐던 법이 많았다.

 

이 책은 <당당하게 일하고 정당하게 대우받아야 할 이 땅의 노동자들에게>란 문구로 시작한다. 헌법을 몰라서 기본권을 못 누리는 것은 아니듯 노동법 몰라도 먹고 사는 데 문제는 없다. 그러나 살다 보면 "그런 법이 어딨어요?"라고 되묻는 경우가 생기지 않던가.

 

법대로 하자는 사람 제대로 사는 사람 없다는 말도 있지만 알아 두면 좋은 법이 노동법이다. 세상의 모든 법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보호해주는 법은 없다. 우는 애 젖 준다는 속담이 있고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법도 알고 있어야 부당함에 맞서거나 찾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직장을 다니다 명퇴하고 자영업을 하는 지인이 있다. 노동자였을 때는 몰랐던 고충이 사용자가 되니 입장이 다르게 보이더란다. 불성실한 직원을 하루 만에 자르기도 하고 자금이 돌지 않아 직원 월급을 며칠씩 늦게 줘야 할 때도 있단다.

 

지인이 악덕 사장은 아니지만 분명 근로기준법을 어긴 것이다. 그래도 자신이 노동자였을 때를 생각해 최대한 노동 조건을 좋게 만들려고 노력한단다. 직원들 돌아가면서 여름 휴가 떠나면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사장은 늦게까지 일을 할 수밖에 없단다.

 

그래도 근로기준법은 필요하다. 노동 문제는 인권 문제고 일 하다 죽지 않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직장은 안전한가요?도 중요하고 당신의 노동은 안녕한가요?도 중요하지 않은가. 지키니 손해보는 법이 아닌 지켜서 서로 좋은 법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