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 나이쯤 되면 - 최준

마루안 2021. 9. 23. 19:22

 

 

그 나이쯤 되면 - 최준


아닌지, 문득 곁눈질로라도 
어둠이 그리우면 몸이 쇠했다는 증거
누구나 그 나이쯤 되면 
혼자 가게 되는 것 아닌가 
그만큼 했으면 싸움질도 싫증이 나고
거친 숨과 뜨거운 몸도 식힐 줄 알지 않는가 
열어놓은 마음 문틈으로 얼비치는 죽음 그림자 
그걸 모시느라 여기까지 당도했다는 걸 
깨닫게 되지 않는가 
고통하며 세운 모든 것들이 
결국은 세월 속에 무너내리는 소리 들리지 않는가 
누구나 그런 죽음의 몸종으로 한세상 살아왔음을
아는 것 아닌가 
길은 늘 생애보다 길게 마련인 것 
그 길 도중에서 나 죽으면 
눈 귀 어두워지면
남겨진 길로는 몸 떠난 마음만 갈 일인 것을 
마음만 자욱히 운무에 헤매일 것을 
그런 어둠 속으로
몸 끄느라 지친 마음만 죽음을
죽도록 그리워하는 것을, 그런 때
곁을 질러가는 무명의 개 한 마리 예사롭지 않네 
가을 깊으면 개도 집이 그리운 건지 
휘청휘청 킁킁거리며 옛 기억 더듬어 가네

 

 

*시집/ 칸트의 산책로/ 황금알

 

 

 

 

 

 

행성 - 최준

 

 

보이지 않아서 무서운 게 자꾸 없어지는

그게 무서워

 

혼자 숨어 서서

 

지나가는 것들의 날개에 매달린다

 

분노가 열두 번 우주를 왕복하는 동안

슬픔이 은하를 한 바퀴

 

알 수 없었다

 

바깥을 가둬두고 싶은 것인지

안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인지

 

날마다 떠 있을 태양

오늘도 해안을 들락거리고 있을 파도

고대의 돌기둥들과 너무 오래 싸우느라

바람은 어제보다 좀 더 상처 깊은 골짜기를

찾아 헤맬  것인데

 

나가지 마라 나서지 마라

 

입술이 소금에 절은 창조주가 구름에 대고 말한다

상해 가는 주머니의 별들을 꺼내 보여주면서

 

그러니

 

어쩔 수 없다 나를 열고 내 안을 비집고 들어서며

저녁을 다시 감춘다

너무 커서 오늘도 끝자락을 만져볼 수 없는

 

저, 검은

내 안의 무한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