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를 돌아보는 저녁 - 천양희
길을 가다가 가끔씩
뒤를 돌아본다
말을 타고 달리다 이따금 내려
잘못된 것은 없나
뒤를 살펴보는 인디언처럼
두고 온 무엇이 있기라도 한 듯
뒤를 돌아본다
나도 모르게 생긴 버릇이다
뒤돌아보는 나는 지금 뒤편의 그늘을 보고 있는 것이다
뒤를 돌아보는 일이
나를 돌아볼 때처럼 어둑하다
내가 혼자가 되다니,,,,, 돌아보면
나는 나 자신을 추스른 것이다
세상에 할 기억이 많아
진퇴양난을 겪기도 한 모양이다
가던 길 돌아보다
세상 참 더럽게 시끄럽네, 참을 수 없을 때
물속에 비친 달빛 같은
정화론(淨和論) 한편 쓸 수 있겠다
나는 오랫동안 한길 가기를 원했으므로
지금은 오래
뒤를 돌아보는 저녁이다
*시집/ 지독히 다행한/ 창비
그늘에 기대다 - 천양희
나무에 기대어 쉴 때 나를 굽어보며
나무는 한뼘의 그늘을 주었다
그늘에다 나무처럼
곧은 맹세를 적은 적 있다
누구나 헛되이 보낸 오늘이 없지 않겠으나
돌아보면 큰 나무도
작은 씨앗에서 시작된 것
작은 것이 아름답다던 슈마허도
세계를 흐느끼다 갔을 것이다
오늘의 내 궁리는
나무를 통해 어떻게 산을 이해할까,이다
나에게는 하루에도 사계절이 있어
흐리면 속썩은풀을 씹고
골짜기마다 메아리를 옮긴다
내 마음은 벼랑인데
푸른 것은 오직 저 생명의 나무뿐
서로 겹쳐 있고 서로 스며 있구나
아무래도 나는
산길을 통해 그늘을 써야겠다
수풀떠들썩팔랑나비들이 떠들썩하기 전에
나무들 속이 어두워지기 전에
# 천양희 시인은 1942년 부산 출생으로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사람 그리운 도시>, <하루치의 희망>, <마음의 수수밭>, <오래된 골목>,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 있는가>, <너무 많은 입>,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새벽에 생각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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