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자리를 보는 방법 - 고태관
히말라야를 오르는 셰르파들은 들꽃 냄새로 길을 찾습니다
밤하늘에 매달린 흔들개비를 올려다보느라 멈춰섭니다
갸웃거리는 머리에 뭉뚝한 뿔이 자랐습니다
꽁무니 따라 쫑긋거리던 별이 미끄러져 내립니다
졸다가 깼다가 혀로 코를 적시며 온 길
눈 감고도 아는 길목에서는 입으로 목줄을 끌어당겼습니다
줄 감긴 자국을 핥으며 별똥별의 경로를 새깁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나눠 먹고 나란히 가벼워집니다
함부로 풀을 뜯지 않은 허기
젖은 코를 킁킁거려 갈림길에서도 망설이지 않습니다
지구는 오른쪽으로 도나요 아니면 왼쪽
지상의 꼭대기에서는 소용없는 일
염소자리 아래 엎드린 길잡이는 나침반으로 떨립니다
점자로 박힌 마을 불빛이 다 꺼진 뒤에야 잠을 청하면
정수리 위에서 북극성이 희미해집니다
우리가 지나온 자리에서 들꽃이 시듭니다
갑자기 깨어난 모닥불 곁으로 고개를 묻는 건
눈 내리는 꿈을 꾸었기 때문
우리가 새겨 놓은 발자국 위에서 새로운 들꽃이 피어납니다
*시집/ 네가 빌었던 소원이 나였으면/ 걷는사람
추락사 - 고태관
다시는 노래하지 않겠습니다
은퇴 선언 마지막은 허리를 꺾는 사죄의 인사
오지 마 가까이 오면 떨어질 거야
술 취해 곯아떨어진 아버지
다시 술 먹으면 내가 니 아들이다
살면서 무심코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겠지
얼마나 높은지 곁눈질로 계속 아래를 보더라고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딱 한 잔만
입을 떼지 않으면 노래 밖으로 갈 수 없네
확 떨어질 거야 맨정신으로는 곤란해
끊는다니까 술 생각을 해야 술 밖으로 벗어날 수 있다니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꿈
높은 데서 떨어지기만 하다가 깨어나는 악몽
술이라도 마셔야 잠아 와서 그래
뺨을 올려붙이면서 노래하라고 했다면
누구든 내 등을 떠밀었다면
잔을 채워 주면서 마지막이라고 했다면
사람들은 사건 현장을 피해 걷습니다
# 고태관. 래퍼 피티컬(PTycall). 1981년 울산에서 태어나 1999년 고등학교 락밴드에서 래퍼로 활동했다. 2000년부터 대학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2007년 결성한 시를 노래하는 '트루베르'에서 리더로 활동했다. 2020년 5월 15일 세상과 작별했다. 1주기에 맞춰 그의 첫 시집이자 유고시집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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