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차꽃 앞에 놓는다 - 박남준

마루안 2021. 9. 11. 21:40

 

 

차꽃 앞에 놓는다 - 박남준

 

 

겸손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꽃이 있다

순결하다는 말이

그 곁에 미소를 머금고

살며시 배어 있는 꽃이 있다

그리하여 곱기도 곱구나

몸을 낮추고 눈을 맞추어야 비로소 보이는

아미 숙인 수줍음이 뒤따라 나오는 꽃이 있다

첫사랑을 고백하던

그 떨림 같은 꽃이라니

사랑한다는 말이 그렇게도 부끄러웠을까

꼭 그만큼 숨은 듯 다소곳이 너는 피었구나

그윽하여라

첫눈처럼 내렸구나

꽃송이 눈꽃송이 함박눈처럼

소복소복 소담하게도 너는 피어나서

달빛과 별의 향기 길어 올렸으리

서리서리 서리를 펼쳐 놓는 밤이나

날리는 눈보라 아랑곳하지 않다니

고요하여라

세상의 단아하고 고혹한 시어들을

노란 가을 햇살의 꽃술 속에 안고 품었구나

일찍이 어떤 꽃의 수사가 하마 이러할까

네 앞에 나를 기꺼이 내어놓는다

 

 

*시집/ 어린 왕자로부터 새드 무비/ 걷는사람

 

 

 

 

 

 

정선 - 박남준


정선에 가면 첫사랑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터무니없이 두근거리는 전설이 떠돈다는데
정선이라고 부르면
강원도 산골 정선에는
어쩐다지 정선아이~ 불러 보고 싶은 이름의
여자가 살고 있을 것 같네
달덩이 같은 웃음 마냥 좋아 보였지
그녀가 보름달처럼 둥실 떠오르면
굽이굽이 동강이나
으랏차차 공주부양 치솟은
절창경의 몰운대도 눈에 선히 어리지만
아우라지 아라리 정선아리랑을 먼저 들먹거리게 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어깨춤 절로 우줄대는데
청승맞다 낮달은 자꾸 술잔에 빠져드나
정선 장날 메밀전병에 술기운 거나해졌는데
누구의 푸짐한 품을 베고 잠이 들었나

"오늘 갈는지 내일 갈는지 정수정망 없는데
맨드라미 줄 봉숭아는 왜 심어 놨나
강물은 돌고 돌아서 바다로나 가지만
이내 이 몸은 돌고 돌아서 어데로 가나"

꿈결인 듯 아우라지 강물에 뗏목은 흘러가고
어느 전생 나도 그 뗏목꾼이었을까
흘러 흐르고 흐렀는데
아우라지 거기서부터 한 십 년 흐르다 보면
해당화 붉은 꽃잎 난부분내 휘영청거리고
기엄둥실 일엽편주의 푸른 바다로 넘실거릴 것 같네
그대의 눈에도 그려 놓은 꿈같은 풍경이 있을 것이야
그래 한 백 년쯤 날을 벼린
적어도 한 백 년은 기도를 하고 간절해져서 다가가려는
사랑 같은 것 말이야
사랑이란다 사랑 말이야

첫사랑의 설렘이야 이 나이 언감생심 택도 없지만
정선아 정선아이~
목을 빼고 기다려 볼거나 숨이 차도록 찾아 해매일거나
정선에 와서 첫사랑의 청춘을 떠올린다
꽃분홍 붉게도 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