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가을나비 - 박인식

마루안 2021. 9. 7. 19:29

 

 

가을나비 - 박인식


깊고 푸른 투명 너울대는
한 날개 한 날개마다
하늘 마디 꺾였다 휘고
흰 마디 다시 꺾이면
푸르고 깊은 슬픔이 아름다움을 가두네
아름다움도 저리 지독해지면
지독한 사랑처럼 수인(囚人)이 되고 마는가
매혹에 갇혀 입술 떨고 있을 뿐 아무
말도 열지 못하는 낮달
못 본 척
가을나비 한 마리

하늘 마디

접었다 폈다
폈다 접었다


*시집/ 언어물리학개론/ 여름언덕

 

 

 

 



언어물리학개론 - 박인식
-늘그막


늘그막이라는 말의 운율에서
그늘을 읽는 저녁
어슴프레 구겨지고 주름지는
언어물리학의 잔상들은
어떤 체념의 늘그막인가

동녘에 눈부시던 수사학
서녘으로 기운 지 오래

내 말의 움막에 그늘지는
이 초라한 문장은 얼마나
뜨겁던 격정의 늘그막인가


 


# 작가 박인식은 1951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나무에게 사사한 언어물리학으로 글을 쓴다. 시집으로 <겨울모기>, <러빙 고흐 버닝 고흐>, <인수봉, 바위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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