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오래도록 - 이기록

마루안 2021. 9. 3. 22:28

 

 

오래도록 - 이기록

 

 

밀린 꿈들을 꺼내 햇볕에 말려둡니다

 

빈집은 요란하진 않아

눅눅했던 계절을 차곡차곡 쌓아두지요

목덜미는 자주 부풀어

자줏빛 유령 안에 들어가

밤새 온몸을 쏟아냅니다

 

겹친 얼굴을 오래 앓자

흐릿한 사람이었다는 위안이 옵니다

헐거워진 편지들을 뒤적이는데

사납던 혀들은 어디까지 갔는지

비워둔 이름만 찌르고

고개를 숙인 채 모여들지요

 

그제야

오래도록 금이 갑니다 늘 아름다웠어요

 

 

*시집/ 소란/ 책읽는저녁

 

 

 

 

 

 

드라이플라워 - 이기록

 

 

아직 내가 젖지 않아서 너를 두고 있구나

가만히 두었는데도 너는 벌써 아무것도 남지 않은 구석에 들어와 있구나

휴일이 되어 술을 마셨고 검은 노래가 왔다가 사라졌는데도

너만은 유령처럼 옆에 서 있구나

그렇게 있구나

더 이상 바라볼 수 없구나

 

이방인의 입술에 침을 바른다

내가 바라본 것은 숨 가쁜 일이다

순간이 지나고 다시 순간이 지나고

매번 지나는 소리가 오늘은 제자리를 돌고 있다

멈춰선 시간은 눈이 부은 채 거울 뒤로 사라졌다

볼 수 없는 이마들

지리멸렬한 말들이 부는 무덤이다

밖에는 폭우가 내렸고 불에 탔으며 간간이 마을이 잠기기도 했다

그렇게 지나가는 몸이다

 

목이 가시에 찔려서 너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다

물속 가득 사라진 너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다

기억하지 않는 바다 위를 떠돈다

 

이것은 너에 관한 기억이며 내가 할 수 있는 기억이다

무너진 기억은 다시 살 수 없는 기억이다

잡을 수밖에 없는 기억만 기억된다

 

이름들이여 그렇게 기억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