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뜬눈으로 나를 기다리는 쪽창에 대하여 - 이윤학

마루안 2021. 8. 19. 19:36

 

 

뜬눈으로 나를 기다리는 쪽창에 대하여 - 이윤학

 

 

내가 밖에 나갔을 때

그는 안에서 밖을 내다보았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는

감쪽같이 사라져주었다 그는

느낄 수 없는 존재의 시발점이었다

알 수 없는 존재의 무모한 스토킹이었다

 

브레이크가 파열된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 내달리다 커브를 꺾지 못해

그대로 샛강을 나는 나를 잠시라도

지켜보았을 터 그는 밤샘 뜬눈으로

나를 지켜보았을 터

 

정신을 차리고

돌무더기에 널브러진 나를 주체하지 못할 때

일으켜 세워준 것도 그였다 그의 손이 입술을 꿰뚫은

돌부리를 제거해준 것이었다 자전거 핸들을 똑바로 

세워준 것이었다 일그러진 바퀴를 굴려 집으로 데려다준

것이었다 부러진 이빨이 끊어내지 못한 희디흰 신경이

누레질 때까지 숨을 불어넣고 빼낸 것도 그였다

 

석유버너 불을 쬔 코펠의 쌀밥을 으깨

미지근한 물을 넣고 휘휘 저어

흰죽을 갖다 바친 것도 그였다

 

새 자전거를 맞춰다 준 것도 그였다

새 자전거에 안장 하나 심어준 것도 그였다

 

 

*시집/ 나보다 더 오래 내게 다가온 사람/ 간드레

 

 

 

 

 

 

별들의  시간 - 이윤학

 

 

지척에서 보았던 그 사람 얼굴을 잊고 살았다

고개를 들고 바라본 그 사람 눈동자

고운 입김으로 그 이름 부르기 위해

겨울 산 정상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새벽하늘은 망설임의 통로를 헤매다

발견한 그 사람의 확대된 눈동자였다

그 사람 이름 속으로 불러보면

소멸한 은하가 다시 태어나

뜨거운 피가 돌고 설렘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눈물이 번지지 않는 혹한의 시간

글썽이며 흩어진 별들의 파편을

그 사람 눈동자로 돌려주기 적당한 시기

수평의 말들이 수직의 별들로 바뀐 시간을

거슬러 그 사람에게 돌아가기 적당한 시기

이 세상에서 살기 불가능한 별들을

그 사람을 닮은 새벽별들을

그 사람의 눈동자에 파종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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