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뜨거운 발 - 김지헌

마루안 2021. 8. 17. 21:41

 

 

뜨거운 발 - 김지헌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때쯤
문득 고개 들어 하늘을 보았다
붉은 홍시 같은 달이 야트막한 언덕을 비추며
조금만 더 가보라고 한다

전력질주하는 손흥민을 보며
발이 축구공보다 빠를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인간이 갖고 있는 206개의 뼈
간절한 기도와 이야기가 새겨진 신전의 기둥

지금 서 있는 곳이 그의 일생의 결론이다
가장 처절하게 달려 도달한 그곳
무수한 발이 뒤따르고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히고
종착에 도달할 때까지 때로는
접질려 절뚝거릴 때도,
연골이 닳아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고통에 찬 뼈들을 오래오래 달래가며
한밤의 환호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80여 년을 달려온 어머니의 발도 우리 집안의
전력질주였다


*시집/ 심장을 가졌다/ 현대시학사


 

 

 

 

어미 - 김지헌

 

 

생의 소실점에 서보면

어미는 배우지 않았어도 중심 잡는 법을 안다

한 발 잘못 딛는 날이면

가계가 몰살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죽을힘 다해 제 새끼 밀어 내놓는

어미라는 말

 

큰비가 마을을 쓸어버리고

버림받은 가축들만 우왕좌왕하던 찰나에도

어미는 제 육신을 산꼭대기로 밀어 올렸다

지붕 위에서 이틀을 버티고 쌍둥이를 낳은 어미 소

그 한 순간을 위해 우주의 기운까지 모아 버텨냈을

어미라는 말

 

몽골 초원 쳉헤르마을 어디선가 기도문이 들렸다

지난밤 대지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를 들었다

간밤에 새끼 양이 탄생했다고 햇살이 금줄을 걸어놓았다

새끼 양이 첫걸음 뗄 때까지 어미는 맘을 놓지 못했다

젖을 떼고 건초를 먹으며 초원을 뛰어놀 때까지

어미는 눈을 뗄 수가 없는 것이다

어린 영혼이 초원의 가족이 되어

눈부신 햇살 아래 다시 튼실한 아이를 잉태할 때까지

어머니는 그렇게 대지의 뿌리가 되어 갔다

 

 

 

 

# 김지헌 시인은 충남 강경 출생으로 수도여자사범대 과학교육과를 졸업했다. 199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다음 마을로 가는 길>, <회중시계>, <황금빛 가창오리 떼>, <배롱나무 사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