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서른세 번의 만남, 백석과 동주 - 김응교

마루안 2021. 8. 16. 19:30

 

 

 

백석과 윤동주의 시를 비교하면서 읽을 수 있게 한 책이다. 시인 김응교는 일본 문학에 정통하기도 하지만 시인 윤동주와 김수영 연구가이기도 하다. 시집도 냈지만 시인보다 학자가 더 어울리고 업적도 평론에서 빛난다.

 

대책 없는 이 활자 중독자는 시인에 관한 글은 놓치지 않고 읽으려 한다. 유독 백석과 김수영에 관한 글은 더 그렇다. 소설 잘 안 읽는 편이지만 김연수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은 백석의 일생을 그린 이야기여서 열심히 읽었다.

 

백석, 윤동주, 김수영, 서정주를 한국 4대 시인으로 생각한다. 학자들이 정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시를 읽으면서 내 스스로 정한 것이다. 아쉽게도 서정주는 작품보다 살아온 정체성이 나와 맞지 않아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교과서에서는 윤동주와 서정주를 배웠으나 나중 시를 알아 가면서 백석이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영욕의 일생이었을망정 천수를 누린 서정주 빼고는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났다. 백석이 비록 북한에서 천수를 누리다 세상을 떠난 것으로 밝혀졌지만 백석은 40대 이후 시를 쓰지 않았다.

 

시 쓰기를 멈춘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윤동주는 백석보다 다섯 살 아래다. 그러나 윤동주는 1945년에 세상을 떠났고 백석은 1995년까지 살았다. 가령 윤동주가 더 오래 살아 해방 후 북쪽에서 활동했다면 남한에서 민족 시인으로 가르쳤을까. 호기심 많은 무지렁이 독자는 뚱단지 같은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윤동주의 짧은 삶이 더욱 아쉽다. 동주는 참회록에서 만 이십 사년 일 개월의 삶을 부끄러워했다. 사슴처럼 맑은 영혼을 가진 백석이 남한에 남았다면 더 많은 시를 썼을 것이다. 백석도 윤동주도 김수영도 작품 수가 많지 않아서 더욱 빛난다.

 

윤동주는 백석의 시집 사슴을 구하지 못해 도서관에서 빌려 정성스럽게 필사를 한다. 시를 옮겨 적어 보면 손끝에 전해지는 싯구가 가슴에 박힌다. 내가 시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한 자씩 이곳에 옮기는 것도 그 맛이 좋아서다.

 

모든 시를 내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아는 시인보다 모르는 시인이, 읽은 시보다 못 읽은 시가 더 많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편을 읽더라도 제대로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공부도 읽기도 죽을 때까지다. 맛난 음식보다 맛난 글을 읽을 때 더 기쁘다. 좋은 시도 읽고 공부도 되는 이 책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