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언젠가는 부디 - 윤의섭

마루안 2021. 7. 31. 23:01

 

 

언젠가는 부디 - 윤의섭

 

 

이 말은 다가오지 않은 날들에 거는 주문에 쓰였는데

이루어진 게 없어요 효력이 약해서는 아니었어요

지켜보지도 않고 떠나버렸기 때문이죠

이 말은 간절하지만 무능력하고 때론 무책임하고

부디 내일 해가 뜨기를 이런 말은 어색하지만

세상의 모든 미래에 붙일 수 있는 염원

저주에 쓰이기도 하지요 후회할지라도 정말 견디기 힘들면

그러나 이 말에는 이미 언젠가는 같이 있지 않을 거라는 예언이 들어 있어요

하지 말았어야 하는 소원을 말해버린 거지요

행복하길 잘 살길 건강하길 꿈을 이루길

이 말은 축복을 주고 떠나갈 때 잘 어울리는 말이지요

 

쓰지 않을 말들의 사전을 작성 중입니다

사람 이름도 들어가고 연월일 잊고 싶은 날짜도 수록됩니다

 

부디

원뜻 : 바라건대 꼭

다른 뜻 : 곁에 없더라도 꼭

 

다음 말에는 부디를 붙여도 좋다

꿈이기를

 

 

*시집/ 내가 다가가도 너는 켜지지 않았다/ 현대시학사

 

 

 

 

 

 

생기 - 윤의섭

 

 

죽은 나무가 담겼던 화분의 흙은 따뜻했다

저녁 바람이 노을 지는 서녘처럼 무너지며 불어올 때

 

긴 우연이다 내가 살고 있다는 건

 

새벽에는 돌보던 분이 운명하였고

집들이로 화분을 선물했던 어머니가 입원하였고

친족을 모신 추모공원에 다녀와서는

 

종말에 이르러서야 모든 연원이 생기는 거라고

 

소행성에 착륙한 채 사라졌던 어느 탐사위성은 실낱같은 신호를 보내다 삼년 만에 돌아왔다는데

 

그러므로 생멸의 경계에는 기다림이 놓여있다

삶을 기다리거나 죽음을 기다리거나

 

또는 오지 않는 사람을 또는 이미 올 수 없는 사람을

기다릴 기운만 남아서

 

정말 끝에 이르면 끝은 사라진다

 

흙은 식었지만

온기는 바람 속으로 옮겨갔을 뿐이다

 

 

 

 

 

*시인의 말

 

나는 꿈을 꾸었고 꿈은 나를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