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의 항변 - 주창윤
태양도 깨어나서 보지 않으면
죽은 별이다.
나는 늘 깨어
저 바깥 끝에서 밀짚모자 같은 토성이나
삶은 달걀 같은
행성들의 소멸을 바라보며
슬퍼하였나니
내 품계가 몇 단계 떨어져서
들어보지도 못한 왜소행성이 되어
그냥 떠돌이 별이 되었지만,
너희들의 바깥에서
더이상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그 끝에서
기체의 사유로
살아왔다는 것을 아느냐!
저 바깥 끝에서 살아온
삶의 경계를 너희가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
깨어 있지 않으면
태양도 그냥 죽은 별이다.
*시집/ 안드로메다로 가는 배민 라이더/ 한국문연
사우나 출애굽기 - 주창윤
재앙의 나날들이었다.
열정의 청년 노예들은 애굽으로 팔려갔다.
한강 하구는 녹차라테가 되었고
양서류들은 시내의 우물마다 알을 낳았다.
열대 박쥐 떼가 들끓었고
독종(毒腫)이 퍼져
모두 다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선지자를 따라
홍해로 가는 홍대입구역 지하도에서
서교로 가야 하는지 동교로 가야 하는지 길을 잃었다.
바다는 갈라지지 않았다.
거세지는 미세 모래폭풍과 구름기동 너머
저 높이 사우나 산이 보였다.
산상으로 통하는 계단을 밟고 옥상으로 올라가서
계명을 받았다.
"각자도생하라."
# 주창윤 시인은 1963년 대전 출생으로 한양대 신문방송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영국 글래스고대 영화와 텔레비전 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물 위를 걷는 자 물 밑을 걷는 자>, <옷걸이에 걸린 양>이 있다. <안드로메다로 가는 배민 라이더>는 23년 만에 낸 세 번째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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