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주름 - 김명인

마루안 2021. 7. 16. 22:04

 

 

주름 - 김명인

 

 

나이답지 않게 팽팽한 얼굴을 쳐다보다
눈가장이에 더께 진 잔주름을 발견하지만
다독일수록 엷어지는 것도 아닌데
목덜미까지 파고든 몇 가닥 실금 가리려 애쓰는 건
그것이 조락을 아로새긴다는 확신 때문,
아무리 변죽을 두드리며 달래더라도 주름에게
하루하루란 윤택한 시간이 아니다
쏟아져 내리는 여울처럼 시원하던 복근이
어느 날 이마며 두 볼에도 흉물스럽게 옮겨 앉는다
손금 하나로 골목을 주름잡았다는 그를 볼 때마다
잔골목이 하도 많은 동네라서 길 잃기 십상인
나도 맨발인가, 아기는 쪼글쪼글한 주름
발바닥까지 휘감은 채 태어난다
울음을 터뜨리며 종주먹질해대는 말년이 아니더라도
주름은 누구의 것이든 삭은 동아줄인 것을,
그걸 잡고 우리 모두 또 다른 세상으로 주름져간다
주름투성이의 손바닥을 움켜쥐고
저 세상의 아기 하나 지금 막 요람에서 돌아눕는다

 

 

*시집/ 이 가지에서 저 그늘로/ 문학과지성사

 

 

 

 

 

 

간반 - 김명인


채색이 흐린 무늬가 손등으로 번졌지만 
아직은 섭생이 내밀할 거라는 착각?
꽃이라 여기지 말자, 목소리도 이젠
탁해질 때가 되었다, 목둘레의 
간반이나 볼 언저리 검버섯
어느 날 문득 안 보이던 것들이 보여서 
드디어 목적지에 다가섰다는 생각,
오래오래 걸어와 부은 발등에도
그늘은 얹혀 있다, 저승꽃이라 하지 않고
산책길에 덮어쓴 낙엽 같은 것이라고,
문을 여는 손잡이로 맺히는 
저 꽃을 우리는 간반이라 한다
악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끝내 쥐어지지 않는 다짐이라면
붙잡은 것들을 놓아 보내야 하리
닫히는 꽃이여, 손잡이가 눈앞에 있다

 

 

 

 

*시인의 말

 

제 몸이 아니라며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는다.

서쪽이 없다고 나는 중얼거리지만

이 추궁 견뎌야만 그 땅에 내려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