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단단한 멍 - 이기록

마루안 2021. 7. 17. 21:23

 

 

단단한 멍 - 이기록

 

 

살아남은 사내가 문을 연다

 

알몸으로 부르는 빈 구멍들은

숨바꼭질을 하는지 굳은 유령의 옷을 입고

멈추지 않는 비린 장례식에

녹아내리는 피부를 덮었다

퍼붓는 소금기를 남기고 분열하는

 

식지 않는 불안을 지불하며 비틀거린다

더 깊이 부패하기 전

땅은 등 굽은 문자를 남긴다

목소리를 벗기며

더는 말 할 수 없는 장면

 

불면의 촉수가 냉정한 가슴을 동여맨다

타는 몸을 잉태하지 말고

사라진 태양을 안고 잠들 수 있게

오지 않은 절망이 사라지기를

 

우린 단단한 꽃멍이 든다

 

 

*시집/ 소란/ 책읽는저녁

 

 

 

 

 

 

그러니 한번 말해보자 - 이기록

 

 

그러니 한번 말해보도록 하자

 

그래, 나는 이미 없는 사람과 살아간다 이미 없는 사람과 연애를 하니 고민스럽다 누워있는 밤에 헐떡일 때쯤 매번 손가락을 잘라 바닥에 뿌려둔다 너는 이미 없는 얼굴을 가지고 내 뒤를 따른다 모서리가 긁힌 탁자에서는 너를 읽을 수 있을까 나는 잃어버린 말을 찾는 중이다

 

이번 질문은 네게 하는 것이다 너는 난해한 운명을 맞이하는 중이며 남은 것은 벌레 먹은 사과 같은 애가 타는 껍질뿐이이 껍질만 벗어두는 너를 이틀 전부터 얼기 시작한 침묵을 이야기한다 두려웠던 말들도 그저 말이 되는 밤 너는 지나갈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다 비스듬한 사랑니를 잘게 부수며 혀만 얼어붙은 유보된 사랑

 

잠에서 빠져나온 영혼은 열어둔 창문으로 행진을 준비 중이니 사라진 벽과 웃자란 나무의 결만 흔들도록 하자

 

그러니 한번 말해 보시오

나는 맛있었니

 

 

 

 

*시인의 말

 

내내 잃어버려서

쓸 때마다 허기가 진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언제 시를 쓸 수 있을까

나비처럼 으스러지는 순간들

쓰지 못하는 말들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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