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혼자 울 수 있도록 - 이문재

마루안 2021. 7. 16. 21:36

 

 

혼자 울 수 있도록 - 이문재
-오래된 기도 3


혼자 울 수 있도록
그 사람 혼자 울 수 있도록
멀리서 지켜보기로 한다
모른 척 다른 데 바라보기로 한다

혼자 울다 그칠 수 있도록
그 사람 혼자 울다 웃을 수도 있도록
나는 여기서 무심한 척
먼 하늘 올려다보기로 한다

혼자 울 때
억울하거나 초라해지지 않도록
때로 혼자 웃으며
교만하거나 배타적이지 않도록

저마다 혼자 울어도
지금 어디선가 울고 있을 누군가
어디선가 지금 울음 그쳤을 누군가
어디에선가 이쪽 하늘을 향해 홀로 서 있을
그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도록

그리하여
혼자 있음이 넓고 깊어질 수 있도록
짐짓 모른 척하고 곁에 있어주는 생각들
멀리서 보고 싶어하는 생각들이
서로서로 맑고 향기로운 힘이 될 수 있도록


*시집/ 혼자의 넓이/ 창비

 

 

 

 

 

 

혼자의 넓이 - 이문재


해가 뜨면
나무가 자기 그늘로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종일 반원을 그리듯이
혼자도 자기 넓이를 가늠하곤 한다
해 질 무렵이면 나무가 제 그늘을
낮게 깔려오는 어둠의 맨 앞에 갖다놓듯이
그리하여 밤새 어둠과 하나가 되듯이
우리 혼자도 서편 하늘이 붉어질 때면
누군가의 안쪽으로 스며들고 싶어한다
너무 어두우면 어둠이 집을 찾지 못할까 싶어
밤새도록 외등을 켜놓기도 한다
어떤 날은 어둠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유리창을 열고 달빛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그러다가 혼자는 자기 영토를 벗어나기도 한다
혼자가 혼자를 잃어버린 가설무대 같은 밤이 지나면
우리 혼자는 밖으로 나가 어둠의 가장자리에서
제 그림자를 찾아오는 키 큰 나무를 바라보곤 한다

 

 

 

 

 

*시인의 말

혼자의 팬데믹

 


혼자 살아본 적 없는
혼자가 혼자 살고 있다

혼자 떠나본 적이 없는
혼자가 저 혼자 떠나고 있다

혼자가 혼자들 틈에서 저 혼자
혼자들을 두고 혼자가 자기 혼자

사람답게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저마다 삶을 살고 있다

춤과 노래가 생겨난 이래
지구 곳곳에서 마음 안팎에서
처음 마주하는 사태다

이 낯선 처음이 마지막인지
아니면 이것이 진정 새로운 처음인지
혼자서는 깨닫기 힘든 혼자의 팬데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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