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당신의 바깥 - 권상진

마루안 2021. 7. 6. 21:27

 

 

당신의 바깥 - 권상진


자기가 삼킨 눈물에 빠져 죽은 사람을 안다
딱 그의 키만큼 울고 갔다
염장이가 그를 슬픔과 함께 단단히 묶고
눈물이 새 나가지 않도록 오동나무 관으로 경계를 두르는 동안
죽음을 빙 둘러선 사람들은
그에게 흘러든 어떤 구름에 대해 증언하거나
자신의 몸에 눈금을 그어 보이는 시늉을 했다
막잔을 비우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일어설 때
코끝까지 차오른 눈물에 그가 술잔처럼
일렁이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우리는 모두 당신의 바깥에 서 있었다
울고 있었지만 아무도 당신이 술잔에 채워 준 구름을 마시지 않았다
한 이틀 슬픔들이 속속 다녀가고 마지막 날엔
잘게 부서진 눈물이 항아리에 고였다
주목나무 아래 그를 뿌려 두고 남은 이들이
출렁거리면서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합동시집/ 시골시인-K / 걷는사람

 

 

 

 

 

 

풍등 - 권상진


사막의 모래 알갱이는 별들의 스트랜딩이라고 일행 중 누군가 말했을 때 사구 저 편에서 후두둑 소리가 들렸다 심장에 불을 켜고, 지느러미가 돋은 한 무리 고래들이 하늘에서 지워지는 일이었다

간결한 일기를 쓰고 싶은 날에는 가망 없는 문장들에 두 줄을 그었다 부력을 지닌 단어들은 너무 가벼워서 마침표를 찍기도 전에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네 개의 보기 중에서 두 개를 버리는 것은 쉬운 일 할 수 있는 일은 일기장에, 하고 싶은 일은 풍등에 옮겨 적었다

이루어지지 않아도 된다 소망이란 원래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의 애칭이니까 책상 앞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처럼  풍등을 하늘에 붙여 보고 싶었다

사막을 꿈의 해변이라 여기는 사람들에게, 멸종 위기의 꿈들이 기적처럼 모여 사는 이곳을 나는 꿈의 서식지라 말해 주겠다

사막이 주름을 접었다 펼 때마다 실패한 꿈들이 바람의 결을 따라 일렁거린다 헤어진 애인이 문득 생각을 스쳐갔고 풍등에게 돌아올 좌표를 일러주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었다

다시 풍등이 오른다 빛과 빛들이 번져 어두울 틈 없는 하늘, 수도 없이 오르고 점멸하며 사라지는 동안 사막은 후두둑 소리로 요란하겠지 누가 큰 소원을 빌었는지 별들 사이로 커다란 풍등 하나 달처럼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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