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입산 - 강영환

마루안 2021. 6. 29. 21:49

 

 

입산 - 강영환

 

 

눈을 맑히기 위해 산에 들었다

비 온 뒤 숲은 깊어지고 고요하다

갖은 잎들이 흔들리면서 아는 체

눈에 든 나쁜 소리들을 지워가고 엽록소로

향기를 데려 와 코를 세워 준다.

각자 틈새 슬금슬금 들여다보는 하늘빛도

회색 벽에 갇혀 졸아든 살갗을 터주고

신경 끝까지 따라와 손등이 맑아졌다

 

산길은 여러 갈래로 흩어져 가고

보이지 않던 새소리가 몸에 들어 와

뜻풀이 해보라며 난해하게 지저귀었다

어찌 알 수 있을까 그 해박한 깊이를

어쩌다 한 번 산에 들어 사는 눈에는

풀잎에 떠는 바람조차 어둠인 것을

온 몸이 산으로 가득찬 가벼움으로

하늘을 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는 내

눈을 깎아 귀를 넣고

작은 바늘 하나 얻어 가리다

 

도시 날카로운 모서리에 상처입은 사람들은

숲으로 떠나고 싶어 한다

나도 가끔은 그랬다

어디로 떠나고 싶을 때 산에 들어

산이 되어 본다

 

 

*시집/ 숲속의 어부/ 책펴냄열린시

 

 

 

 

 

 

고독사(孤獨死) - 강영환

 

 

이 지상에 내려 올 때

두 손으로 가슴에 꼭 껴안고 가져 온

'고독'을 방 안에 들여 놓고

한 노인이 그렇게 돌아갔다

바람조차 들지 않는 방에

유리창으로 잠시 들렀다 간 햇살이

광장에 죽음을 알렸다

 

엄마 없는 아이들에게 지상은

햇빛 속에서도 너무 춥다

아이들도 방 안에서 혼자였다

부모는 아이들을 주검으로 산에 내다 버리고

말이 통하지 않는 문밖에서

버림받은 신발들이 강가에 남겨졌다

 

끊어진 강과 절개된 산이

사람 씨앗을 모두 버리고

자궁에서 꺼낸 '고독'을 키웠다

말은 입 속에서 물거품이 되었고

눈빛은 온기대신 성에만 담았다

어디에 가든 쓰러지지 않는 벽만 남아

서로를 무너뜨렸다

 

 

 

 

 

*자서

 

내 시는 숱한 바람에 부대끼고 있는 자화상이다. 굴곡진 삶에 대한 대응 방식이며 많지 않은 시간들을 지나오면서 세상의 숱한 주관성으로부터 받은 상처들의 기록이다.

스스로에게 보내는 위무의 언어이며 나를 위해 비밀리에 조제한 처방전이기도 하다.

그저 병력을 엿보고자하는 이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스스로 불면에 빠져 고뇌하고 아파해 본 사람만이 가슴으로 들을 수 있는 암호여서 이를 해독할 수 있는 이들만이 위무 받을 수 있으리라.

나는 나에게 수없는 불순한 기호를 띄워 보내며 혼자 슬며시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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