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개망초 연대기 - 김재룡 시집

마루안 2021. 6. 26. 22:11

 

 

 

지난 몇 달 동안 오래 붙들고 있던 시집을 이제야 내려 놓는다. 작년 가을쯤이었나. 헌책방에 갔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헌책으로 팔리기에는 아직 싱싱한 새책이다. 이런 책을 만나면 깨끗이 읽고 헌책방으로 데려다 준 마음씨 고운 독자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서점엘 갈 때마다 신간 코너에서 시집을 들춰보기에 분명 이 시집도 내 손길에 스쳤을 것이다. 특히 최근에 시집을 꾸준히 내고 있는 걷는사람, 반걸음, 달아실, 상상인 등에서 나온 시집은 빼놓지 않고 들춰본다.

 

모든 시집을 다 읽을 수는 없어도 최소한 제목과 약력과 목차 정도는 훑어 보는 편이다. 그렇게 스쳐 지났던 시집이 우연히 헌책방에서 다시 인연이 된 것이다. 다소 두꺼운 시집을 큰 기대 없이 들췄다가 숨이 턱 막혔다.

 

여백이 많지 않은 빽빽한 문장을 거침 없이 읽어 내려간다. 여운감에 앞서 긴장감을 일으키는 시다. 아! 한 사람의 인생이 우주라더니 딱 들어 맞는 일생이 보인다. 저자의 아버지는 스물 넷에 군 복무 중 총에 맞아 죽는다.

 

6.25 전쟁이 끝난 지도 한참 지난 1958년에 군대에서 총에 맞은 것이다. 훈련 중 오발 사고였다. 1957년 생인 저자는 그때 돌이 지난 두살배기 아기였다. 저자의 모친은 아장 아장 걷는 아들을 데리고 후송병원에 입원해 있는 남편을 면회한다.

 

남편은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얼마 지나 숨을 거둔다. 젊은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보고 죽은 것이 그나마 위안이라 할까. 사고 원인 규명은커녕 치료도 제때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냐야 했을 젊은 군인의 인생이 아득해진다.

 

지금이라면 헬기 수송으로 신속히 수술을 해서 충분히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분단에다 반공 국시의 독재자, 거기다 야만적인 군대 속성이 숨 막히게 했던 시절은 이렇게 한 사람의 인생을 속절 없는 운명으로 만들었다.

 

시인이 여섯 살이 됐을 때 어머니는 한 씨 성을 가진 남자에게 재가한다. 의부는 성이 다른 큰아들을 위해 몸이 닳도록 일을 했다. 시인은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친아버지와 가족을 위해 묵묵히 평생을 바치고 세상을 떠난 의부에 대한 애틋함을 모두 간직하고 산다.

 

제목에 연대기가 들어 있는 것처럼 시집에는 사대에 걸친 시인 가족의 연대기다. 시인의 이름에 룡(龍)이 들어간 것도 운명일까. 시인은 기적이나 운명을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기적은 믿지 않아도 얼마전부터 운명이란 걸 믿는다.

 

시인은 개천에서 용이 난 것마냥 척박한 환경에서 무난히 자라 평생 체육교사로 근무했고 이 시집 나오고 얼마 후에 정년 퇴직을 한다. 개망초처럼 꿋꿋한 인생을 살았다. 나는 개망초를 좋아한다. 너무 흔해 눈길을 받지 못하나 질긴 생명력을 가졌다.

 

얼마 전에 다녀온 모란 공원에도 개망초가 지천으로 피었다. 너무 많은 것을 엉망으로 만든 코로나 시국에도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안락함은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린 사람들 덕분이다.

 

<개망초 연대기>는 눈에 쩍쩍 달라 붙고 읽을 맛이 나는 시가 많지는 않다. 그래서 입으로 낭송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런 시도 여럿 있다. 그러나 고은의 만인보처럼 한 사람의 인생이 시가 될 수 있음을 알게 한다. 오래 기억에 남을 귀한 시집이다.

 

 

*아버지는 내가 두 살 때 돌아가셨대요. 그래서 아버지 얼굴도 몰라요. 군대에서 총 맞고 돌아가셨대요. 지금 아버지는 한씨고 저는 김가예요. 그래서 나는 지금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걸 알아요.

 

필경, 처음이자 마지막일 시집을 묶을 요량이다. 그 동안 쓴 시라는 것들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꼴이 될지 모르겠다. 쓸쓸하다.

 

*시/ 쓸쓸한 연대기/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