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이상한 재판의 나라에서 - 정인진

마루안 2021. 6. 22. 22:42

 

 

 

흥미로운 내용이라 단숨에 읽은 책이다. <이상한 재판의 나라에서>는 판사 출신 정인진 변호사가 생에 처음 쓴 책이다. 24년 간 판사 생활을 했고 지금은 법무법인 바른의 변호사인 저자는 내년이면 칠순이 된다.

 

그가 경향신문에 연재한 칼럼이라 이미 읽은 글이 여럿이지만 다시 읽어도 두루두루 공감이 간다. 오랜 기간 판사로 밥벌이를 했고 지금은 변호사로 일 하고 있는데 그가 말하는 밥벌이에 관한 명문장이 있다.

 

<벌이는 엄숙하다. 그 수고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때론 위험하고 때론 눈물겹다. 사람마다 지닌 자존의 바탕이자 사람이 겪어내야 하는 온갖 굴욕의 원천이다. 자산 소득의 안온함에 몸을 맡겨도 좋을 만한 이들에게는 하잘것없어 보일지 몰라도, 몸뚱이로 벌어먹어야 하는 사람에게 세상 모든 일 가운데 제 벌이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그리고 그 소중함으로 인해 벌이는 고통이다. 벌이란 밥을 버는 일인데, 벌이가 엄숙한 것은 밥이 엄숙해서다. 엄숙함을 넘어, 밥은 어쩌면 신성할지도 모른다. 밥 없는 목숨은 없다. 밥이 없으면 온 세상이 무너진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하지만 재판 후에 남는 판결문은 읽기도 어렵다. 또 재판 경험이 없는 사람은 읽어본 적도 없을 것이다. 저자는 판결문에 관해서도 아주 세밀하게 언급한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판결 쓰기는 글쓰기 중에서도 여느 것과는 다른 독특한 성격을 지닌다. 판결은 공문서다. 그것은 내면의 고백도 아니고 사실을 기술하는 보고서도 아니고 허구적 갈등을 그려내는 문학 작품도 아니다. 판결은 국가권력을 대변하여 다툼을 공적으로 해결 짓는 법원의 의사표시다.

 

판결은 항상 결론이 있다. 판결은 당사자 중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선언하는 문서다. 그 결론이 지니는 무게 때문에 법은 판결에 반드시 이유를 붙이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판사의 밥벌이도 쉽지는 않다.

 

그 외에는 <법관은 재판을 할 때 재판을 받는다>거나 <판결은 소통이다> 등을 설명하면서 판사가 작성한 판결은 승복할 만한 이유를 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직도 논쟁을 벌이고 있는 차별금지법은 통과되어야 한다는 부분을 읽고는 내가 이 사람 제대로 봤구나 했다.

 

변호사 전관예우에 대한 글은 평소 관심이 있던 터라 귀가 솔깃해진다. 불신을 자초하는 한국 사법 병폐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관예우가 머리 좋은 지들끼리 북치고 장구치며 해먹는다고 생각한다.

 

이연주의 책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에도 전관예우를 해주지 않으려는 검사를 피해 이미 배당된 사건을 다른 재배당하는 기술을 부리는 장면이 나온다. 사회과학적 소양보다 시험 치는 데에만 머리가 잘 돌아가는 법조인의 전형적 단면이다.

 

저자는 뭉뚱그려 전관예우를 무조건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가 문제인지를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다. 법으로 규제한들 편법적 경로를 찾아가면서 변형하여 진화할 거라고 한다. 그리고 전관예우가 질기다면서 단기간에 없어지지 않을 거라는 결론을 내린다.

 

<단 한 건이라도 전관예우가 존재하고 그것이 국민들의 눈에 보이는 순간, 사법 전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는 데 문제가 있다. 전관예우는 공직자가 사회에 끼치는 패악의 대명사다. 여기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귀가 더해져서 사법 불신은 점차 강도가 높아졌다>.

 

후반부에는 변호사 사용법을 알려준다. 소송 의뢰에서 보수 지급까지 아주 유용한 팁이다. 이 부분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정보가 있다. 소송이 진행 중일 때, 수임한 변호사 본인을 만나기 어렵고 그 직원만 만날 수 있는 곳은 피하라고 한다.

 

정인진은 자신이 재판관 시절 어쩌다가 법정에 설 수밖에 없었던 어느 할머니의 외침을 듣고 선사(禪師)의 방할(峰喝)이라 했다. 내게는 이 책이 선사의 방할이다. 법과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