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눈물이 나오는 순서 - 김태완

마루안 2021. 6. 21. 21:57

 

 

눈물이 나오는 순서 - 김태완


늙은 엄니가 운다

늙은 엄니 고개 떨구고 온몸을 바닥에 내려놓고 숨죽여 운다
엄니는 늘 그렇게 울었다 슬프고 절망스러울 때,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을 때, 믿었던 내가 엄니 가슴에 못질했을 때, 내가 알고 있는 엄니는 늘 그런 모습으로 주저앉아 모든 슬픔을 엄니 탓으로 만들었다

늙은 엄니가 나 땜에 운다

어릴 적 보아왔던 그 모습으로 숨죽여 운다 이제는 다 큰 자식 놈 눈치보며 성치 않은 몸 예전보다 더 크게 내려놓고 작은 체구 녹아내린 눈사람처럼 온몸의 상처를 끌어안고 엄니가 운다 늙은 엄니가 흘리는 눈물이 주름을 타고 덜컹거리며 바닥에 떨어진다

늙은 엄니는 나 땜에 울고 나는 아직도 나 땜에 운다

내가 나 땜에 우는 동안 엄니는 남 같은 자식 위해 조심스레 달구어진 뻘건 대장간 쇠붙이 조각 떨어지듯 뚝뚝 무거운 눈물 떨어진다
어려운 게 자식이고, 세상 눈물의 절반이 하필 말붙이기 어려운
그 자식의 삼라만상 두두물물이라

눈물론, 이루 다 헤일 수 없는
눈물이 나오는 순서.


*시집/ 아무 눈물이나 틀어줘/ 북인

 

 

 

 

 

 

먼저 그리움 - 김태완


그리움은 먼저 와서 기다리는 것
제가 먼저 가 있을게요.
심중의 아무리 멀고 힘든 일이라 해도
실타래 같은 멍울 뒤엉킨 매듭을 찾아
긴 인연의 실마리 한 줄을 붙잡고
제가 먼저 가 있을게요.
실바람에도 흔들리는 그 무엇이 있거든
눈길 한번쯤 보내주세요.
험하고 모진 진통의 시간과 끊어진 길에서 낙하하는
꽃잎이 되어 울음을 토하는 쓸쓸한 저녁
오지 않을 것 같은 봄날처럼
어느 날 그렇게 오시겠지요.
불 꺼진 가로등 숨어버린 골목 어귀
거기, 제가 먼저 가 있을게요
제가 먼저 그리울게요.


 

 

# 김태완 시인은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 신탄진에서 성장했다. 2000년 계간 <오늘의문학>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추억 속의 겨울은 춥지 않다>, <마른 풀잎의 뚝심>, <왼쪽 사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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