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지독히 다행한 - 천양희 시집

마루안 2021. 6. 3. 19:37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게 책이 없었다면 인생이 얼마나 삭막했을까. 분명 그랬을 것이다. 특히 시집이 그렇다. 영국에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시를 읽으며 달랬다. 당시 한 직원 때문에 한동안 불면증이 올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잠을 못 자 몽롱한 정신에도 시를 읽으면 마음이 진정 되었다. 천양희 시집이 그랬다. 한국에 왔다 돌아갈 때마다 몇 권의 시집을 꼭 챙겼다. 일단 오래 읽을 수 있어서 시집이 좋았다. 그 속에 천양희 시집이 있었다. 

 

2017년, 15년 만에 돌아와서 그동안 밀렸던 시집을 찾아 읽었다. 먹고 싶은 한국 음식은 없는데 읽고 싶었던 시집은 많았다. 시에 대한 갈증이랄까. 천양희 시집을 찬찬히 다시 읽는 계기가 되었다. 물도 급히 먹으면 체하듯 시도 급히 읽으면 사레가 들 수 있다.

 

시에 몰입할 수 있는 방법은 공감이 가는 시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것이다. 그동안 필사 해놓은 시가 이 블로그 곳곳에서 나온다. 다람쥐가 먹이 숨겨논 듯 비공개로 저장된 시들을 다시 선별해 꺼내 읽는 맛도 쏠쏠하다.

 

시 한 편을 읽고 그 밑에 깨알처럼 감상을 적은 짧은 후기도 여럿 보인다. 지금 생각하면 참 열심히 시를 읽었구나 싶다. 다 외로움 때문이다. 누구는 외로워서 시를 쓴다는데 나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시를 읽는다.

 

함께 했던 외로움의 파편들이지만 모두 다 내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시간도 역량도 부족해서 버릴 것은 버리고 일부는 다시 정리해 공개로 돌린다. 언제까지 정리할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된다. 어쩌면 영영 꺼내지 못하고 묻힐 시도 있을 것이다.

 

시인이 새 시집을 냈다는 소식이 기뻤다. 흔히 천상 시인이구나 싶은 사람이 있는데 천양희 시인이 그렇다. 평생 시밖에 모르고 산 사슴 같은 시인이라고 할까. 아무에게 해코지를 못하는, 자신이 먹어야 할 풀마저 토끼에게 양보하는 사슴일 것이다.

 

시에서 그게 보인다. 1942년에 출생한 시인은 우리 나이로 팔순이다. 세월은 청순한 문학소녀를 할머니로 만들었지만 시인의 시에서는 열여덟 소녀 같은 감성이 느껴진다.

 

천양희 시인은 인터넷을 하지 않아 이메일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어쩌면 편리함에 오염되지 않는 것이 이런 시를 쓰는 원천일지도 모른다. 모쪼록 시인의 건투를 빈다. 한참 기다려야 할 테지만 벌써부터 다음 시집을 기다린다.

 

 

하루는 하나의 루머가 아니다 - 천양희

새벽이 왁자지껄 길을 깨운다 가로수들이
벌떡 일어서고 눈에 불을 켜고 가로등이
소의 눈처럼 끔벅거린다 땅은 꿈쩍 않는데
차들이 바쁘다 발을 구른다 구를수록 눈덩이처럼
커지는 하루 구르는 것이 하루의 일이라서 일의
속이 오래 덜컹거린다 어둠 속이든 가슴속이든
속은 들수록 깊어지나 바깥은 하루살이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진다 지는 것들은 후기(後記)가
없다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고 말할 뿐이다 나는
왠지 세상에서 서늘하여 지는 해를 붙잡았다
놓는다 잘 보내고서 기억하면 되는 걸 그러면
되는 걸 하루가 천년 같다고 생각해본 사람들은 
안다 하루는 하나의 루머가 아니다 오늘 하루는
내가 그토록 살고 싶은 내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