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내 안에 봉인된 삶이 있다 - 박남준

마루안 2021. 6. 7. 22:25

 

 

내 안에 봉인된 삶이 있다 - 박남준


마당 앞 울타리 위
죽은 매화나무와
때죽나무 긴 그늘을 베어 세운
작은 솟대
새의 몸이었던 푸른 나이를 기억하므로
노래에 가닿을 수 있을까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것
그의 사랑과 죽음
슬픔과 기쁨 또한 몸에 들여놓는 것이리
내 안에 봉인된 전생이 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겠다
내가 새의 이전을 알고 있듯이


*시집/ 어린 왕자로부터 새드 무비/ 걷는사람

 

 

 

 

 

 

말뚝과 반란 - 박남준


고정되어 있는 운명이 있다
누군가 다가와 그의 목에 닻줄을 매고
묶어 놓기를 기다리는 
그렇게 해야만 목숨이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바닷가 움직일 수 없는 말뚝 너머
물이 들고 물이 난다
닻줄의 시선으로 눈어림을 적신다
한 번쯤 저 말뚝 송두리째
해일을 꿈꾸었을까

세상의 어느 바닷가
포구에 흔한 말뚝이 외마디 단말마로 다가왔다
흐린 하늘과 취기 탓이었나
가물거리며 날아가 버린 날개
청춘의 반짝이던 문자들이
갯벌에 새긴 물결의 파문처럼 재상영된다

내게 박힌 말뚝은 무엇인가
흔적이 쉬지 않는다
생의 반란이 자꾸 틈을 비집는다

 

 

 

 

*시인의 말
 
돌아보는 영혼에 화끈거리던 열기
얼굴을 감싸던 두 손이 기억하리라
낯 뜨거운 시의 문을 언제 닫을까
그러나 또한 고쳐 생각한다
저만큼 재촉하는 바람의 시간이
탄식으로 눈 내리는 시베리아 자작나무 숲으로
그늘 깊은 사막의 사구 너머
별들이 기다리는 바오밥나무 아래로
나를 이끌고 갈 것이므로
신파처럼 낡은 창을 열어 놓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