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새가 날아간 후 - 박주하

마루안 2021. 5. 28. 21:53

 

 

새가 날아간 후 - 박주하

 

 

저 나무 겨드랑이에서

다투며 피었던 꽃들

모두 날아간 뒤

나무는 혼자 무슨 생각을 하나

 

어깨가 휘도록 무성했던

잎 지고 난 뒤

이리로 오라던

간절한 손짓 내려놓고

나무는 날마다 무슨 생각을 하나

 

재잘거리던 씨앗들

박수를 치며 웃던 잎사귀들

다 떠나보낸 뒤

비우고 비운 마음속에는

또 무엇이 들어오나

 

말하지 않아도 굳은 다짐이 있었나

아무도 모르게 번진 약속들이 있었나

 

서쪽 하늘이 붉게 타오르자

누군가는 지구의 끝이라 말하고

 

가지 끝에 앉았다 날아오르는 새는

그것을 시작이라 말한다

 

 

*시집/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 걷는사람

 

 

 

 

 

 

오월의 사람에게 - 박주하

-노무현

 

 

못다 한 말 품고

한 번만 다녀가세요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꼭 한 번만 다녀가세요

할 말이 많아서 오는 동안 홀연 잊었다면

그냥 눈발이 이마를 적시듯 오세요

강물이 바다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기에

바다로 가는 길목에서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당신이란 희망을 붙잡고

좀 더 멀리 가고 싶었습니다

좀 더 멀리 보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투박하고 깊은 미소

당신의 뜨거운 심장을 놓치고 한없이 울었으니

오월의 사람이여

그리운 이름이여

손톱만 한 흔적으로 한 번만 다녀가세요

꽃이 피는 봄날이 아니어도

꿈속으로

꿈속의 흉터라도 되어서

 

 

 

 

 

# 박주하 시인은 경남 합천 출생으로 1996년 <불교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항생제를 먹은 오후>, <숨은 연못>,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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