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죽음 밖 어디쯤 있을 나 - 심명수

마루안 2021. 5. 22. 19:23

 

 

죽음 밖 어디쯤 있을 나 - 심명수


언제쯤이었는지 짐작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거미는 결코 죽을 생각은 없었던 걸로 알고 있다

거미가 몇 초 동안 살아 꿈틀꿈틀한다
주검의 날개가 겨드랑이로부터 돋아난다
미동도 없이 거미는 자꾸 허기를 느끼곤 한다
아까 먹다 만 치킨 날개를 후회한다

주검, 왠지 살아 있을 때보다 정신이 멀쩡하다는 느낌
하지만 마취가 풀리듯 점점이
암막처럼 펼쳐지는 빛
그물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던 날벌레들의 절박했던 순간,
등골이 환해진다

일상이 투시되던 생, 생이란
몇 층에서 누굴 만났다 몇 층으로 미끄러지는지
개인 사생활 차원에서 거미들에겐 논란의 여지가 없을 리가 없다

전생에서도 이승에서도 나의 빌어먹을 습성은 변함이 없다
빈손에
가방도 없어
고만고만한 인연
주렁주렁 관념들로 꼬여
또다시 복잡 미묘한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야 할,

우주가 소용돌이쳐 거미집에 꽃잎, 나뭇잎
날벌레들이 찾아와
위로랍시고 목숨을 선물로 바치겠지
그런 나는 타고난 식성대로 게걸스럽게 받아먹겠지

나는 잠시 죽어서 내가 사는 나를 본다


*시집/ 쇠유리새 구름을 요리하다/ 상상인

 

 

 

 

 


최소한 신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 - 심명수


물론 인간은 하나님을 신으로 모시고 산다. 인간은 각자에 걸맞은 신을 신으로 모시고 산다지, 집에도 있고 집 밖에도 있어서 마음에도 있고 마음 밖에도 있어 신발장엔 신발들이 나란하다. 
나무 위 길가 시장통, 심지어 인간이 닿는 어디라도 인간이 닿지 않은 그 어떤 곳에도 신인 신답게 신어어야 했다. 인간의 영혼을 구원과 심판으로 구분 짓는다는 신, 신도 위계가 있고 색깔이 있다. 하이힐, 구두 슬리퍼 짚신 나막신, 하양 빨강 검정 얼룩 신, 지구의 신 은하를 총체적으로 주관하는 우주의 신, 그 신들도 그에 따른 체계가 있다. 그렇다고 신들도 별들처럼 반짝일 수는 없다. 그리하여 인간은 신을 떼어내고 살 수 없는 가치 관계.
태초에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했다. 태초에 인간들은 하나님을 창조했다. 믿거나 말거나이겠지만 이 이분법을 모독하는 자들은 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
우주는 크고 작은, 더 크고 작은 우주가 있고 신도 크고 작은 더 크고 작은 신이 있고 있어서.

보이저 1호는 42년 동안 고작 우주의 손톱 끝도 도달치 못했다.
내 새끼발가락 사이 아픈 티눈을 탄생시킨 건 꼭 낀 신, 신발 때문이다.


 


# 심명수 시인은 충남 금산 출생으로 201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쇠유리새 구름을 요리하다>가 첫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