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연기의 지점 - 김유미

마루안 2021. 5. 15. 19:43

 

 

연기의 지점 - 김유미


서쪽이 몰려와 저녁을 지피고 있었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았을 때,
두 눈에서 켜지던 세계

팔을 휘저으면 고인 흐느낌들이 발목도 없이 걸어 나왔다

누가 사는 몸이었나?

겨울이 두 살을 밀어 올렸고 손가락 사이에서 나무가 자라나 바람을 흔들다 떨어뜨리곤 했다

한 발짝 두 발짝
유목의 길에서 만난 생의 난간
그 위에서 나를 부축하던 질서들
살들이 외로워서 흘릴 게 많아졌다

왼쪽 눈을 감으면 오른쪽 눈이 아팠다

찌익 늘어나는 솜사탕도 있고
쑥쑥 깊어지는 울음도 있다
부력의 날들이 공중으로 부양되었다

어디까지 갔니?
여기까지 왔다
발자국이 번지는 소리가 되어
해 질 녘까지 치솟는 그네

 

 

*시집/ 창문을 닦으면 다시 생겨나는 구름처럼/ 파란출판

 

 

 

 

 

 

음복 - 김유미


당신은
짧은 인사말의 문장으로
뒤꿈치를 든 이슬비의 무게로
지나갔으면 좋겠어

우리의 규칙이 모두 사라지고
몸이 그늘로 덮여도
살짝 윙크를 날리며
사뿐 날아오르는 것처럼

이곳저곳
떠난 자리가 남아있는 자리를 침범해도
어느덧
밤이 깊어 가는 것처럼
늙어 가는 것처럼

그러니까 이런 봄밤
어깨를 기대 오는 창문이었으면
라일락을 흔들고 가는 바람이었으면

 

 



*시인의 말

 

구름의 포자로

먼 리듬으로

 

문득 돌아온

언니들

 

증언들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