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두 번째와 첫 번째 사이 - 정경훈

마루안 2021. 5. 15. 19:39

 

 

두 번째와 첫 번째 사이 - 정경훈

 

 

두 다리 멀쩡한 것이 성에 차지 않았으니 모쪼록 발품을 팔아

새가 되었습니다

당신에게로 도달할 수 있는 지형이 평안해졌다는 것입니다

 

줄자를 길게 늘어뜨려 수평을 만들고

칠석의 달이 차오르면

견우와 직녀가 남기고 간 오작교가 떠오릅니다

 

깃털의 결을 다듬고 부리를 닦으며 매무새를 정돈해봅니다

 

당신을 견주니 당신도 모르게 보이는 당신의 자태

파동으로 인해 부서지는 나의 심장 그 안의 호수 이성의 박멸

 

이 다리를 건너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요

 

밤하늘에서 가장 빛날 수 있는 행위를 고릅니다

나의 첫 번째 여행

두 개의 다리로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숨이 벅차면 자신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저는 두 개뿐인 다리로 당신에게 가려는지요

오, 나의 superego.....

 

고백과 고백의 다리에서 천 마리의 학이 날아오릅니다

 

 

*시집/ 아름답고 우아하기 짝이 없는/ 문학의전당

 

 

 

 

 

 

이월 삼십일 - 정경훈

 

 

다시 그의 표정을 핥을까, 노도의 미몽과 투쟁한다

다시 그의 골반 속에서 망망해질까, 바싹 뒤집힌 고깃덩어리가 된다

다시 그의 음모로 호로새끼가 될까, 두 손으로 소주잔을 움켜쥔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에게는 사람이 있고, 없는 신앙이 있다가

나에게서 나눠지고, 남과 나눠 가지다가

홀로 견디다 번뇌에 지고 마는 것이, 아니다

 

놓치지 않기 위해 쓰디쓴 벽을 안고

버스에 올라타는 너의 어린 몸을

차마 보지 못하고 보내본다

 

나랑너랑 도망가자

머나먼 밀실로 들어가자

나무 한 그루가 뻗어 있는 마당으로 가자

누구도 찾지 않는 깊은 곳으로 가서

부디 살만 찔 수 있게, 우리 같이 밥을 해먹자

 

나의 첫 꿈을 꾼다

감인 줄 알고 가까이 걸어가니, 복숭아가 매달려 있다

너는 씨를 품고 있고, 너는 잡히고 줄줄이 먹힌다

첫 꿈을 꾸고 너는 광광 울어버린다

그리 슬프냐, 명치는 괜찮더냐, 너는 가슴을 가르며 흐느낀다

여자로 태어났어야 했다

 

 

 

 

# 정경훈 시인은 1996년 서울 출생으로 10여 년 축구 선수로 활약했다. 2019년 시집 <저 말고 모두가 노는 밤입니다>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아름답고 우아하기 짝이 없는>은 두 번째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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