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별똥 떨어진 곳 - 곽재구

마루안 2021. 5. 16. 19:22

 

 

별똥 떨어진 곳 - 곽재구


스무살 적에
그는 학생운동을 했지
화염병을 들고
페퍼포그 장갑차 앞에 서서 옷소매를 펄럭였지
서른살에 그는 광고회사의 팀장이 되었지
연인들이 어떤 맥주를 마셔야 하는지 다정하게 알려줬고
어떤 치킨을 밤참으로 먹어야 입사 시험에 합격하는지 속삭였지
새로 지은 브랜드 아파트 분양 광고를 하다가
마흔이 되어 여당 대통령 출마자의 선거 참모가 되었지
당신이 좋아요 당신은 우리의 꿈이라는 카피를 썼지
오십이 되어 총선 공천을 얻어 국회의원이 되었지
사년 동안 악머구리 이리떼의 소굴을 전전하다 제 발로 나왔지
여의도를 떠난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지
스무살이 되기 전 지용의 시를 좋아했고
언젠가 별똥 꽃 떨어진 곳 찾아간다 했지


*시집/ 꽃으로 엮은 방패/ 창비


 




좋은 일 - 곽재구


익은 꽃이
바람에 날리며
이리저리 세상 주유하는 모습
바라보는 것은 좋은 일

어린 물고기들이
꽃잎 하나 물고
상류로 상류로
거슬러올라가는 모습
바라보는 것도 좋은 일

유모차 안에 잠든 아기
담요 위에 그려진 하얀 구름과 딸기들 곁으로
소월과 지용과 동주와 백석이 찾아와
서로 다른 자장가를 부르려 다투다
아기의 잠을 깨우는 것은 좋은 일

눈 뜬 아기가
흩날리는 꽃잎을 잡으려
손가락 열개를 펼치는 것은 좋은 일
아기의 손가락 사이에
하늘의 마을이 있어

꽃잎들이 집들의 푸른 창과
지붕에 수북수북 쌓이고
오래전
당신이 쫓다 놓친 신비한 무지개를
꿈인 듯 다시 쫓는 것은 더 좋은 일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한 - 김유석  (0) 2021.05.17
칠산 노을 - 김보일  (0) 2021.05.16
꽃 진 자리에서 꽃을 기다리다 - 피재현  (0) 2021.05.16
연기의 지점 - 김유미  (0) 2021.05.15
두 번째와 첫 번째 사이 - 정경훈  (0) 2021.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