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몰꼬을 트다 - 강영환

마루안 2021. 4. 27. 22:05

 

 

몰꼬을 트다 - 강영환

 

 

이녘 산과 저녘 들판을 적시던

눈물난 홍수가 물러나자

불어났던 강물도 빠진 뒤 갈대 꺾인 강안에는

북녘에서 떠내려 온 흰고무신 한 짝

체증 든 산하에 엎드려 누웠다

한 짝이래서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고무신을 끌어 올려 눈두렁에 뉘어 놓고

임진강 젊은 농부는

지나치는 길에 슬쩍 발을 맞춰 본다

 

아직도 생생한 고무신

주인공은 무사한 걸까

어쩌다가 떠내려 보내게 되었을까

주인도 농사일 하는 무지렁일까

넘나드는 백로에게 신겨서라도

돌려 줄 방법이 없을까

남은 짝 마저 강물에 떠내려 보내 준다면

외짝 고무신 짝 찾는 날

막힌 물꼬를 시원하게 터서

저녘 산과 이녘 들판 적시는

눈물 홍수라도 함께 만들까보다

 

 

*시집/ 숲속의 어부/ 책펴냄열린시

 

 

 

 

 

 

늘상 비애 - 강영환

 

 

복사빛깔 고운 두 볼에 주려고

벚꽃가지 한 다발을 꺾어들었다

낮게 드리워져 눈에 깊이 든

사월에 눈물 머금은 하늘과 함께

소리도 없이 부러진 가지에 빛이 모였을 때

가지에 매달린 꽃들이 죄다 떨어졌다

받은 꽃가지를 버리지 못하고

빈 가지 되도록 움켜쥐고 선 그대는

더디 오는 오월을 본다

네 눈은 슬픈 비취빛이다

아프기는 오월도 마찬가지다

 

복사꽃빛 두 볼이 떠나고 난 뒤

빈자리에 쌓이는 꽃잎이 고요하다

꽃을 지닌 눈을 버렸을까

지상에 떨어진 물방울도 고요하다

꽃가지를 받아 든 복사꽃빛 고운 손이

잠시 흔들리는가 싶다 쥐어짜더니

꽃물이 하늘로 솟구쳤다 붉은 하늘

파랗게 죽은 노을이 서쪽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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