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간고등어 - 손석호

마루안 2021. 4. 21. 22:00

 

 

간고등어 - 손석호


오른손이 의수인 그는
어선을 탔었다고 했다

노을이 도마 위 핏물을 벌겋게 덧칠하자
무쇠 칼이 고등어 배를 가르던 왼손을 놓아주었다
목장갑에 달라붙은 왕소금을 털어 낼 때
화구 밖으로 거세게 역류하는 화염
파르르 얼굴에서 출렁이는 난바다
석쇠를 뒤집는 팔뚝 근육이 로프처럼 팽팽하게 솟았다
한 번도 눈감지 않은 고등어의 눈알과 마주쳤을 때
연기 때문에 맵다며 갱빈으로 걸어 나갔다
내성천이 바다로 가는 물길을 보여 주자
꾹 깨문 입술 쪽으로 왕소금처럼 왈칵 뿌려지는 눈물
억새 무리 어둡도록 파도가 되어 주고
버들가지가 뺨을 훑어 주는 동안
강물이 이유를 묻지 않고 따라왔다
배를 가른 고등어의 안쪽 등뼈 같은
억새밭 샛길을 가로질러 돌아오며
눈가에 핀 소금꽃 털어 냈다
골바람도 나와 앉은 툇마루의 늦은 저녁상
숙성된 바다를 마시며 컴컴한 내성천에게
어떻게 고등어가 내륙으로 거슬러 올라와 익어 가는지 물었으나
새벽녘까지 희미한 물소리만 들려주었다


*시집/ 나는 불타고 있다/ 파란출판

 

 

 

 

 

 

온산공단 - 손석호


젖은 풀도 못 되면서 마른 장작인 양 불구덩이 곁을 서성거리던 시절, 공단로 사거리에서 길을 잃곤 했다

굴뚝이 내뿜는 화염이 밀려오는 어둠을 끝없이 태웠고 새어 나오는 내 속의 어둠을 움켜쥐고 망설이다 보면 해는 떠올랐다 돌아가지 못한 샛별이 공단로 야적장 뒤편으로 숨어들면 나는 바둑판처럼 그어진 길을 따라 바둑알처럼 규칙적으로 던져졌다 싱싱한 것처럼

닦달하던 목숨이 정의가 죽어도 슬프지 않았던 내게 줄을 튕기고 담벼락을 쌓고 갇히는 하루, 나 대신 슬픔을 가래침처럼 뱉어 주는 굴뚝을 종일 지켜보고 있었다

블록 같은 관계와 정해진 사람들을 억지로 조립하고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모서리, 모서리를 따돌리다 지치면 바람이 방향을 바꾸고 연기는 굴뚝의 허리를 갉아먹었다

야근을 마친 동료들은 굴뚝을 등지고 걸었다 우리가 태웠던 것이 무엇인지 연기가 되어 어디로 흘러가는지 궁금하지 않은 사람처럼

어느 날 내게 불이 붙었는데 연기가 피어오르기도 전에 더 깊숙한 곳까지 불이 번지지 않게 끼니의 뒤꿈치로 비벼 끄며 공단을 빠져나왔다

한참이 지나서야 굴뚝이 가지고 있었던 높이가 생각났다 형은 화장해서 온산 바다에 뿌렸다고 했다 굴뚝이 아닌 나는 여전히 멀리 볼 수 없고 단지 조금씩 타고 있을 뿐이다


*온산공단: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공업단지 이름.